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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관한이야기

한국 산 1만7,000km 걸은 ‘종주산행의 왕’ 신경수 선생]

남산동 2014. 1. 16. 19:09

놀라운 단독 산행자 신경수의 달걀로 바위 치기

백두대간과 9개 정맥, 18개 기맥, 100개가 넘는 지맥을 완주하고 그 외의 400여 개 산줄기까지 종주한 사람이 있다. 그가 걸은 산줄기만 무려 1만7,000km. 서울과 부산을 40번 이상 오간 거리다. 대간과 정맥만 완주해도 사실 상당한 산꾼으로 대접 받는다. 거의 매주말 산에 가도 보통 10년은 걸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맥 이후의 산줄기부터는 등산로가 없는 개척산행이 대부분이다. 지도를 구해 가려는 산줄기를 표시하고 스스로 모든 걸 계획해야 하고, 온갖 가시덤불과 낭떠러지를 헤치고 가야 한다. 이런 등산로 없는 산에서는 1km 가기가 무척 힘들다.


산줄기 종주의 가장 힘든 점은 고도가 바싹 올랐다가 다시 뚝 떨어지길 반복한다는 것이다. 길을 따라 걷는 국토대장정 몇 백 km나 자전거로 가는 수 천 km 거리는 이런 종주에 비하면 누워서 떡 먹기인 셈이다. 1만7,000km를 종주했다는 건, 말이 쉽지 일반인의 생각으로는 그 노력을 가늠할 수조차 없다. 아무리 산이 좋다 해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위대한 미친 짓’을 한 것이다. 과히 ‘종주산행의 왕’이라 부를 만한 신경수(63)씨다.



	대간과 정맥, 기맥, 지맥을 모두 완주하고 나머지 산줄기를 종주 중인 신경수씨.
▲ 대간과 정맥, 기맥, 지맥을 모두 완주하고 나머지 산줄기를 종주 중인 신경수씨.

그는 1951년 서울 신촌에서 태어나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일제 때 징용에 끌려갔다 살아왔지만 징용에서 얻은 지병으로 그가 고등학생 때 돌아가셨다. 이후 할머니, 어머니, 동생 순으로 일 년에 한 명씩 가족이 저 세상으로 갔다. 자신도 수락산 야영 중 버너 폭발로 전신화상을 입어 1년간 꼬박 치료해야 했다.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내고 장남으로서 21세에 가장이 된 그는 대학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서울지방공무원이 되었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어떤 일이든 전력투구하는 성격 때문이었는지 일에 빠져 살던 그는 1994년 당뇨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등산을 권유해 그는 약을 먹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일주일에 세 번 산에 갔다. 일요일과 토요일, 평일 야간산행을 매주 했다. 그러다 1996년 운명을 바꾼 얘기를 듣게 된다. “대한민국 산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얘길 듣고 산줄기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여암 신경준과 고산자 김정호, 이우형 선생과 조석필 선생을 알게 되었고, 진짜 우리나라 산줄기는 백두대간이라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는 <산경표>(1769년 여암 신경준이 저술한 족보형식의 지리서)의 기본 개념인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산줄기 밟기에 나선다. 산자분수령은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르며,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는 산경표의 근간이 되는 분류 원칙이다. 대간이나 정맥, 기맥 등의 산줄기를 갈 때 인위적인 공사로 지형이 바뀌지 않은 한 종주산행 시 물길을 결코 지나지 않으며 모든 산줄기는 연결되어 있다.


1996년부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를 사서 능선을 그려가며 대간과 정맥을 타기 시작한다. 그는 “초창기 대간과 호남·금북·낙동정맥, 한강기맥을 안내산악회를 통해 갔고 나머지는 대체로 혼자 갔다”고 한다. 주말과 공휴일만 되면 산줄기 종주에 나서 2000년에는 1대간 9정맥을 모두 완주한다. 이후 기맥과 지맥 등 나머지 산줄기 종주에 나서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는 몸으로 하는 산행에 그치지 않고 나름의 산줄기 체계를 만들었다. 2002년 한강기맥을 완주하고 어딜 갈까 고민하는데, <신산경표> 저자인 박성태씨가 영산기맥을 권했다. 그때 막연히 알고 있던 ‘산자분수령’의 산경표 원리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국토지리정보원 5만분의 1축척 지형도를 전부 구입해 기맥과 지맥은 물론 우리나라의 모든 산줄기 선을 그었다. 그 결과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와 약간 다른 체계를 만들었다. 1대간 9정맥 이후 18개 기맥, 118개 지맥, 22개 분맥, 850개의 단맥으로 분류했다. 분맥과 단맥은 그가 새로 이름 붙인 개념이다. 분맥은 지맥에서 분기된 30km 이상의 산줄기이며, 단맥은 모든 산줄기에서 분기한 10km 이상 30km 미만의 산줄기다. 이외에도 모든 산줄기에서 분기한 10km 미만의 산줄기를 여맥으로 분류했다. 


신경수씨는 ‘우리 산줄기 이야기’라는 인터넷 블로그(blog.daum.net/shinks32)를 운영하며 정리한 내용을 올렸고, 이 내용이 퍼져 ‘태백산맥에서 백두대간’으로 생각의 전환을 하는 이들이 늘게 되었다. 더불어 그는 산꾼들의 인터넷 사랑방인 ‘한국의 산하’에 2001년부터 산행기와 산줄기 체계에 관한 글을 올렸다. 산행을 다녀오면 사진과 글을 정리해서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 산행기를 보면 산행 과정을 세세하게 사진을 찍어 올려, 완주의 증빙 자료 역할을 한다.



	 인터넷 사이트 ‘한국의 산하’에 2002년 올린 기맥 종주기.
▲ 인터넷 사이트 ‘한국의 산하’에 2002년 올린 기맥 종주기. 산행 후에는 기록을 항상 인터넷에 올려 사람들과 공유한다.

노령산맥은 허구의 산줄기


그도 <신산경표> 같은 산줄기 체계를 담은 책을 내려 했으나 수익성이 없다고 퇴짜를 맞아 출판을 포기했다. 그는 “공무원 월급으로 자비출판은 엄두가 안 났다”고 한다. 그는 우리 산줄기 전도사 역할에 앞장서고 있다.


“백두대간 보존법이 생긴 지 10년이 됐는데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아직도 태백산맥을 가르치고 있어요. 지금 우리나라의 산맥 체계는 일본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가 1903년 조랑말 타고 14개월 동안 만든 개념이에요. 자원 수탈을 위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산줄기를 땅 속 지질이 같다는 이유로 산맥을 설정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 이론을 적용한다고 해도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단시간에 지질을 밝혀내서 정확히 산맥을 정리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 한국의 근간을 이루는 지리 체계라는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보세요. 노령산맥은 실체도 없어요. 허구의 산줄기예요. 그래서 우리 산줄기 바로 알리기를 시작한 겁니다.”



	1 그는 “태백산맥은 없다”며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2 2011년 소양용화단맥 종주 할 때의 신경수씨.
▲ 1 그는 “태백산맥은 없다”며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2 2011년 소양용화단맥 종주 할 때의 신경수씨.

그는 ‘태백산맥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1999년부터 녹색연합 등산학교를 비롯해 불러 주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가서 강연을 했다. 다만 주말의 경우 산에 가야 하기에 주로 평일 저녁에 강의를 했다. 10년이 넘게 산줄기 강의를 해 온 탓에 이제는 산경표에 관한 달변가가 되었다. 산 좀 다닌 사람이라면 아는 내용인데도 그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울컥하며 우리 산줄기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날 정도로 솜씨 좋은 웅변가다.


“정부기관 홈페이지나 산에 있는 안내판 보면 백두대간과 산맥이 섞여서 말도 안 되는 내용이 많고 엉망이에요. 이런 걸 만인이 보는 자리에 버젓이 세워두는 게 부지기수인데 가만히 읽다 보면 돌아버릴 정도예요. 정선 가면 가리왕산을 백두대간에 있는 산이라 하질 않나, 주왕산 안내판은 첫마디가 태백산맥을 들고 나와요. 어떤 생수회사에서는 문구에 ‘청정 백두대간 노령산맥 주화산에서 솟아오른 생수’라고 하질 않나. 이런 게 상당수예요. 정말 답답해요.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고쳐야 해요. 다 바로잡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겁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 산줄기를 아는 것이 내 목적입니다.”


그는 1990년대 “진짜 우리 산줄기인 백두대간을 알려고 한다”며 길도 없는 험산을 열정으로 탔던 초기 종주꾼들의 뜨거운 가슴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과거에 비해 백두대간 종주나 우리 산줄기 개념에 대해 등산인들과 대중의 관심이 무뎌졌지만 여전히 열혈 산경표 신도를 자처한다. 그래서 그는 “우리 땅에는 태백산맥은 없다”며 “백두대간과 정간 정맥이 존재하는 것”이라 한다.


안내판을 수정하면 ‘주왕산은 태백산맥의 지맥으로서’가 아니라 ‘주왕산은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낙동정맥의 산으로서’라고 해야 맞다. 이런 현상은 결국 백두대간보전법은 있지만 백두대간을 제대로 교육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교과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1만7,000km 산행 중 7,000~ 8,000km는 아내와 함께 탔다. 지금은 허리가 안 좋아서 함께 산에 못 가지만 새벽 4시면 일어나 밥 차려 주고 산에서 먹을 도시락을 싸준다. 그의 큰 후원자인 셈이다. 초창기 안내산악회를 이용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혼자서 산행했다. 지맥을 타는 사람 중에는 차량 두 대로 미리 산행이 끝나는 곳에 차를 세워두고 편하게 산행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의 경우 함께 단맥을 탈 사람이 없다.


여암 신경준 선생의 직계 자손


안내산악회 역시 대간과 정맥 중심이라 그의 눈높이에 맞는 산악회가 없다. 지맥을 완주한 사람이 이제야 조금씩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분맥을 타고 단맥으로 넘어온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한편으론 혼자 가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한다.


“산줄기를 타야 하니까 원점회귀할 수 없어요. 그래서 대중교통으로만 가죠. 거의 등산로가 없는 곳을 가니까 독도가 중요해요. 혼자 가면 지도와 나침반을 보면서 계속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서 산줄기를 안 놓치고 탈 수 있어요. 근데 여럿이 가면 일단 사람을 신경 써야 하니 독도에 소홀해지고, 갈림길에서 일행이 엉뚱한 곳을 맞다고 박박 우기면 별 수 없이 따라가야 해요. 그래서 혼자 가는 게 익숙하고 더 편해요.”


여름에는 비박을 자주 하고 2~3일씩 산줄기를 타야 하기에 지방 읍내 여관에서 혼자 자는 경우도 많다. 매일 밤마다 여관에서 지도를 보며 잠든다고 한다. 지도를 보며 어딜 갈까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모든 지역을 대부분 가봤기에 지역별 민심이나 어느 동네가 인심이 좋고 나쁜지도 꿰고 있다.


1990년대에는 주력이 좋아 하루에 30km를 가고 못해도 20km는 갔다고 한다. 요즘은 15km를 간다. 2010년 정년퇴직한 이후에는 일주일에 최소 이틀, 많을 때는 나흘을 산에 간다. 산에 다녀오면 사진과 글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리는 데 평균 3일이 걸린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무명봉으로 나와 있지만 막상 가보면 산 이름이 있는 경우가 많아 현재까지 기록한 산 이름이 8,600개라고 한다. 정상 표지석이나 안내판, 마을사람들에게 확인한다.


산행 중 바위나 위험한 곳이 나오더라도 여간하면 능선을 고집한다. 이는 “마루금에 대한 고집이 아니라 당연한 것일 뿐”이라 말한다. 정 위험한 곳은 바위 사면을 따라 우회하는데 이것 또한 힘들긴 마찬가지다. 이렇게 고생을 감수하며 산으로만 가는 건, 산에 가면 새가 된 기분 때문이라고 한다.


“넓은 공간으로 가는 것이기에 산에 가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어요. 그러면 정신이 맑아지고 산행을 하다 보면 훨훨 나는 새가 된 기분이에요. 그래서 산줄기를 외면할 수 없는 거죠. 죽을 때까지 산에 갈 겁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우리 산줄기의 족보를 정리한 여암 신경준이 그의 직계 조상이다. ‘납 신(申)’씨의 경우 대부분 평산 신씨가 많은데 그는 신경준 선생과 같은 고령 신씨다. 산줄기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그 인연 때문인지 더 깊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2010년 지맥을 완주하고 이후 분맥을 다 타고 현재 850개의 단맥 중에 350개를 완주한 신경수씨. 단맥을 완주하면 우리나라의 10km 이상 되는 산줄기는 다 탄 것이 된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칠순이 되는 2020년에 완주하게 된다.


쓸데없는 것까지 미디어에 소개되며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 혼자서 묵묵히 아무도 간 적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저 “산이 좋아서 가지, 누가 알아 주느냐는 중요치 않다”며 다만 “자기 집 뒷산이 어느 산줄기에 속했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다시 목소리를 높인다.


“알고 산을 타는 것과 모르고 타는 건 차이가 커요. 산줄기를 알고 타면 산행이 몇 배 더 즐거워요. 안내산악회를 따라가더라도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자기 산행을 해야 해요. 혼자 간다는 심정으로 임하면 훌륭한 산줄기 답사가 될 수 있어요. 그게 아니고 앞사람 뒤꽁무니만 따라가면 아무 소득이 없고 혼자서 다시 가라고 하면 못 가요. 남들 따라만 다니지 말고 혼자서 길을 찾는 습관을 들여 보세요. 산행의 다른 즐거움에 눈을 뜨게 될 겁니다.”


히말라야 8,000m 고봉을 올라가는 것만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한반도의 모든 산줄기를 종주하고 있는 최초의 인간이 여기 있다. 태백산맥은 없다고, 지리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목청 높이는 사람이 여기 있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무모한 사람이 여기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놀라운 단독 산행자, 신경수 선생의 조용한 바위 치기는 오늘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