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는 저잣거리에서 검을 사용하지않는다

산행의상식

안전불감(안내산악회의잘못된 행태)

남산동 2013. 2. 4. 07:39

 

등산 붐이 일면서 등반 사고도 늘어나고 있다. 매년 7000~8000명의 등산객이 사고를 당해 119 구조대의 도움을 받고 있다. 산악 사고가 늘어난 것은 안전을 관리해야 할 가이드가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있다.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본지 기자들이 지난달부터 선자령, 설악산, 태백산, 계방산, 덕유산 등 산행지 5곳을 동행 취재했다.

"산에 가면 알아서 움직여야 합니다. 문제 생기면 010-0000-0000으로 전화하시고요."

↑ [조선일보]기다려도 오지않는 가이드 서울의 한 산악회 회원들이 3일 오전 7시쯤 강원도 설악산 대청봉 정상을 오르고 있다. 정상에 오른 본지 기자가 회원들을 안내하기로 한 산악회 소속 가이드 4명을 기다렸지만, 가이드들은 20여분간 보이지 않았다. /곽래건 기자

↑ [조선일보]길 안내도 안하고 혼자 가는 가이드 - 지난 2일 오후 1시 20분쯤 강원도 평창군의 계방산 중턱. 본지 기자가 산악회 소속 가이드(빨간색 원 표시)를 따라가봤더니 그는 회원들 보다 50여m를 앞서 갔다. 길을 안내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간 가이드는 10여분 뒤 뒤따라간 회원들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시중 기자

지난 2일 오전 강원 평창군과 홍천군 경계인 해발 1577m 계방산. 서울에서 1명당 3만8000원씩 내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산을 오르는 일명 '가이드산악회' 40여명이 산행에 나섰다.

이날 버스 한 대에만 7~8개의 산악회원이 섞여 있었다. 서로 얼굴도 체력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었다. 산행을 이끈 대장 김모(61)씨는 "코스대로 나가면 된다"며 혼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김씨에게 "단체로 가는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알아서 가면 된다"고 답했다. 다른 회원들도 각자 아이젠을 착용하고 눈 산을 올랐다. 산행 중간에 김씨에게 "같이 온 회원들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지만, 대답은 "다 알아서 가고 있다"였다.

정상에 도착해서도 대장은 "하산 코스가 2개인데 알아서 선택하면 된다"고 말하고는 혼자서 빠른 속도로 하산했다. 산행이 처음인 회원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날이 풀리면서 눈 내린 등산로가 녹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대장 김씨가 안전에 대해 챙긴 것은 "산에서는 계속 먹어라. 사고 나지 않도록 조심해라. 옷은 최대한 두껍게 입어라"며 말을 전한 것이 전부였다. 함께 산행한 김모(57)씨는 "산에서 사고가 생기면 결국 헬기가 출동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무박 2일의 설악산 대청봉 산행도 마찬가지였다. 2일 오후 11시 서울에서 출발한 설악산행 버스에는 3만3000원씩을 낸 38명이 타고 있었다. 3일 오전 3시 30분쯤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자 산악회 대장은 "오르막을 한 4㎞쯤 가면 대청봉이 나오고 다시 20분쯤 가면 산장이 나온다. 이후 쭉 내려가 설악동이 나오고 상가 근처에서 버스 타면 된다"고 설명했다. 10시간짜리 산행을 설명하는 데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참고하라며 나눠 준 지도는 글씨가 작아 잘 보이지 않았다.

대장에게 "가이드가 누구냐"고 묻자 "저기 4명"이라고 말했다.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대장은 산행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청봉 정상에 올라서도 가이드는 보이지 않았다. 설악대피소에서 대장에게 전화로 "가이드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38명을 어떻게 다 가이드해 주느냐. 알아서 가시라"는 말 뿐이었다.

산행에서 만난 일행도 가이드를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김모(51)씨는 "(가이드는) 힘들어서 안 올라온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일행도 "가이드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말만 가이드산악회이지 실제 산행은 모두 개별적으로 알아서 움직여야 했다.

지난 2일 39명과 함께한 덕유산 산행도 5명의 가이드가 동행했지만, 출발 전 지도를 나눠주고 간단한 설명만 들었을 뿐 가이드의 역할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지난달 30일 태백산 산행은 가이드가 모든 회원의 움직임을 일일이 챙겼다. 윤모(73)씨는 "원래 (가이드가) 선두, 중간, 후미에서 챙겨야 한다"며 "정상에 가면 거기서 또 대장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전문 산악인들은 가이드산악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한국산악회 소속 김모(58)씨는 몇해 전 대청봉을 올랐다가 백담사 쪽으로 하산하는 길에서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의 도착지인 소공원은 백담사와 반대 코스다. 사연은 이랬다. 이 아주머니는 서울에서 가이드산악회를 통해 전날 밤 출발해 오전 3시쯤 산행을 시작했다. 대청봉에 올랐을 때는 이미 일행이 출발한 뒤였다. 결국 혼자 내려오다 백담사로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끝내 아주머니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갔다.

강릉시청 공무원인 지모(55)씨도 백두대간 종주를 하던 길에 강릉 옥계면 석병산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는 노부부를 만났다. 노부부는 가이드산악회를 따라 산행에 나섰지만, 산행 중 다리를 다쳐 뒤로 처졌다. 그러나 일행과 가이드는 이미 산에서 내려간 뒤였다. 지씨는 "이들이 '가이드를 믿고 왔는데 버리고 가다니 너무하다'며 화를 냈다"고 말했다.

가이드산악회는 버스 한 대인 40명 내외로 인원을 모집하고 보통 1인당 3만~4만원 정도 회비를 받는다. 한 대당 120만~160만원의 회비가 걷히면 60만~70만원 정도의 버스 임차료, 회원 간식비와 점심값 등에 쓴다. 그리고 나머지를 가이드 비용으로 충당한다. 가이드가 조금이라도 많은 돈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가이드 수를 줄여야 하는 구조다. 이 산악회들은 '산행 중 사고는 본인 책임'임을 명시한다. 설악산 무박 2일 등반에서도 '산악회는 행사(산행 등) 중에 발생하는 제반 사고(손해)에 대해 일절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라고 공지했다.

오대희 강원도 소방본부장은 "산행에서 가이드가 항상 앞에서 페이스 조절을 하고 중간과 뒤에서 일행을 챙겨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며 "등산객도 체력에 맞는 산행과 장비를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