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는 저잣거리에서 검을 사용하지않는다

산에관한이야기 56

지리산 前 소장이 지리산을 말한다

공단 31년 근무했어도 아직 지리산 다 몰라 2019년 1월 1일 천왕봉에서 무수한 등산객들이 일출을 맞고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 사무소장 자리에서 물러나,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산으로부터 멀어지려 했으나 지인들이 보내준 지리산 사진을 보자 불쑥 “아! 지리산 고프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반년 만에 다시 지리산에 왔다. 구례에서 새벽 버스로 천은사 입구를 지나며 그간 진통을 반복했던 사찰매표소가 깨끗이 사라진 모습을 보고 역시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했다.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조금씩 양보하고 보태서 합의에 이른 것이야말로 지리산의 포용정신이다. 버스 종점은 성삼재, 2100년 전 마한의 한 부족이 달궁으로 피난을 와서 궁전을 세우고 성이 다른 세 명姓三의 장군을 보내 남쪽 통로..

3,000산 오르고 3,000편 시조 쓴 김은남 시인

바위 뚫는 물방울의 집념으로 쌓은 시탑 3,000산 산행의 거름이 된 자료들. 5만분의 1축척 지형도 남한 전체 분량, 3,000편의 시조, 책으로 펴낸 시조집들. 땀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 30년간 발품으로 시조를 쓴 산꾼이 있다. 오르는 산마다 시조 한 편을 쓰는 고행에 가까운 작업, 그 산에서 가장 고운 돌을 하나 골라내는 마음으로 시탑을 쌓았다. 시조집 를 펴낸 김은남(78) 시조시인이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산행을 한 번 할 때마다 시조를 쓴 것이 3,000편이 넘었다.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인 그가 그동안 펴낸 시조집 을 비롯해 7권에 이른다. 놀라운 것은 오르는 산마다 시 한 편만 쓴다는 것. 그가 오른 3,000산 각각의 산에 관한 시조다. 한 달에 두 번만 등산을 하..

산(山)공부

지리의 깊은 하늘가까운 영랑대에서 바라본 전경 누구나 갈수잇지만 아무나 갈수없는 영역 천혜의 자연경관이 그대로인 지리의 동부능선 영랑대에서 맞은 전경 상봉 중봉을 타고 넘어오는 운해 너무 장관이었다 영랑대에서 반야봉을 바라본 전경 산(山)공부 늘 쉬고 있는 사람은 휴식의 고마움을 모른다. 쉰다는것이 이렇게 고마운것인줄 미쳐 몰랐다는것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마루로 올라 마루터기에 걸터않은 사람많이 할수있는 말이다 그만큼 산을 가는것은 고되지만 즐겁다 고될수록 더욱 즐겁다 라는 말이 맞을것이다 이말을 다시 바꾸어 말하면 고되지않는 산행은 즐거움이 따르지않는다 산을 오르면서 쉬운 길만찾고 수월함을 누리고자 얕은 꽤를 부리는 산행은 산에서의 고되지만 아름다움을 볼수잇는 전경을 보지못할것이다 산에 오르는 행위는..

점필재길 탐방기(주간함양에나온기사)오마이뉴스에나옴

나의 이번 지리탐방기에서 세심하게 설명하지못한부부은 이글에서 보면 설명됨 오마이뉴스에나온기사 (펌 ) 오마이 뉴스에 나온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점필재길 탐방기 도솔산인님과 여러연구팀이 이룬 결실물이다 "소매 가득 청풍이 불어와 나도 신선이 되려하네" 지장사 갈림길을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산허리를 감고 도는 능선에 큰 바위 서너 개가 불꽃처럼 포개져 있다. 환희대(歡喜臺)다. 흐린 날씨지만 환희대에 올라서니 멀리 마천면 내마·외마마을과 금계마을, 휴천면 견불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영규 선생님(대전제일고 교사)은 "왼쪽으로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솔봉인데 지역민들은 문필봉이라고 부른다"며 "아마 문인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지역민들의 바람을 담은 것 같다"고 했다. 잠시 땀을 식히고 다시 발..

마운틴사이언스 <1>] 산은 어떻게 형성됐고, 왜 높고 낮은가?

이미지 크게보기 우리는 무심코 산에 간다.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아니, 이 산이 어떻게 형성된 거지? 왜 높고 낮지?’라고. 막연히 다니기만 했지, 실제 형성된 과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더욱이 하늘에서 내려다본 산의 형상은 절묘하다. ‘평지에서 갑자기 솟은 지형은 왜 솟았으며, 어떻게 이렇게 절묘하게 형성됐을까. 어떤 지형은 왜 울퉁불퉁, 또 다른 지형은 왜 평평하게 됐을까. 계곡은 또한 어떻게 만들어졌고, 능선은 또한 왜 완만하게 됐을까’라는 궁금증은 무궁무진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매우 많다. 학자들에 따라서 주장하는 면적이 60~80%까지 다양하다. 산의 기준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산은 한반도의 절대 면적을 차지한다. ..

김종직 '유두류록'] 도포 입고 짚신 신고… 왜 그리 높은 산 올랐을까?

함양에서 올라 천왕봉 두 번이나 밟아… 이상향 ‘청학동’ 찾아 헤맨 듯 글 월간산 박정원 부장대우 사진 정정현 국장 지리 동북부의 현장 비가 오고 짙은 안개로 시야가 흐리더니 두류봉 정상에서 갑자기 바람이 구름을 몰고 가자 일순 구름과 어울린 봉우리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장관을 연출했다. ‘아, 두류산은 숭고하고도 빼어나다. 중국에 있었다면 반드시 숭산嵩山(중악)이나 대산岱山(동악 태산)보다 먼저 천자가 올라가 봉선을 하고, 옥첩의 글을 봉하여 상제에게 올렸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이산이나 형악(남악)에 비유해야 할 것이다. 창려韓昌黎·주회암朱晦菴·채서산蔡西山 같이 학식이 넓고 단아한 사람이나 손흥공孫興公·여동빈呂洞賓·백옥섬白玉蟾 같이 연단술을 수련하던 사람들이 옷깃을 나란히 하고 뒤따르며, ..

선찰대본산범어사전경도

선찰대본산범어사전경도 범어사 지도가 있다. 금정산 선찰대본산 범어사 전경도 오른쪽 위에는 산림면적, 건물평수, 사암열록(寺菴列錄)이 표현되어 있다. 사암열록이란 일종의 건축물 목록이다. 그리고 왼쪽 아래에는 창건연대, 중창연대, 창립자, 현 주지, 그림을 그린 연도가 표현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범어사의 창립자는 의상조사다. 그런데 창립연대는 흥덕왕 9년(乙卯: 835)이라고 적혀 있다. 이 지도를 작성한 것은 성월대선사가 주지로 있던 1915년 8월 9일이다. 그럼 지금부터 100년 전 금정산과 범어사의 모습이다. 한두 가지 건물만 추가되었을 뿐 전체 구도가 지금과 다르지 않다. p,s 이번에 범어사기루트길 개척을 하며 범어사전경도의 옛지도를 참고자료삼아 일정한방식과패턴의 그라인안에서 절묘하게 놓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