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는 저잣거리에서 검을 사용하지않는다

산에관한이야기

故박영석산악인의 명복을 빌며(그의자서전글귀를 잠시본다)

남산동 2011. 11. 1. 19:30

박영석 "산에서 죽는 것, 거스를 수 없는 내 운명일지도… "


"산에서 맞는 죽음이란 얼마나 행복한가. 산 사나이로서 산에서 죽는 것,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내 운명인지도 모른다" (박영석 자서전 '끝없는 도전' 중에서)

박영석 대장(47)이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언젠가 말했던 것 처럼, 히말라야 어느 골짜기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았다. 세계 최단기간 히말라야 14좌 등반, 최초의 산악 그랜드슬램 달성,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루트 개척 등 세계 산악계의 큰 별이었던 박 영석 대장이 안나푸르나에 묻혔다. 박 대장의 발자취를 2003년 그가 써 낸 자서전 '끝없는 도전'을 통해 돌아봤다.

박영석 대장은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담벼락이건 지붕이건 가리지 않고 높은 곳이면 어디든 오르곤 했다"고 회고한다. 어린 시절 우상은 여행수필가 김찬삼, 산악인 고상돈, 최초로 남극점을 밟은 극지탐험가 아문센(노르웨이) 등이었다고.

"탐험가가 되기 위해 추운 겨울에도 문을 열어놓고 잠들곤 했다는 아문센의 책을 읽고 나서 나도 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 겨울에 팬티만 입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잤다"

이쯤이면 박 대장은 준비된 탐험가이자 산악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던 그가 산악인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오산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동국대 산악부의 '마나슬루 등정' 환영 카퍼레이드를 우연히 본 그날부터 박 대장은 동국대 입학이 아닌, 동국대 산악부 가입을 목표로 학업에 열을 올렸고 재수 끝에 동국대 사범대학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했다. 물론 그 길로 산악부에 가입했고 산악인 박영석의 삶이 시작됐다.

스물여섯이었던 1989년 히말라야 랑시샤리 2봉(해발 6,427m)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박 대장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도전한 것은 1991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첫 도전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 선발대로 암벽을 오르며 루트를 개척하다 100여m 아래로 추락한 것. 가까스로 박 대장을 연결한 로프를 놓치지 않은 동료의 도움으로 추락사를 면했지만 이 사고로 박 대장은 광대뼈가 함몰대는 중상을 입었다. 그가 살아난 것은 기적이었다. 다행히 해발 6.500m의 캠프2에 머물고 있던 미국 원정대의 팀 닥터가 마취약 조차 없이 응급 수술을 집도하며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사고 트라우마는 적지 않았다.

"추락 사고를 당해 수술까지 받은 내가 그해 겨울 두 번째로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6개월 뒤 박 대장은 다시 에베레스트로 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악천후로 인해 정상을 눈앞에 두고 다시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1993년 봄, 마침내 세 번째 도전에서 8,848m의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더욱이 아시아 최초의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이라는 이정표도 세웠다. 그러나 하산길에 동료를 잃었고 박 대장은 오랫동안 깊은 실의에 빠졌다. 이후로도 박대장은 산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다. 그는 '끝없는 도전'을 통해 산에서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산 사나이가 산에서 죽는 것,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차라리 담담하다. 산에서 시신을 만나더라도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 중략… 나는 그들을 양지 바른 곳에 묻거나 가까운 메모리얼에 안치시키고 마음을 다해 명복을 빈다. 나 또한 히말라야 어느 골짜기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이후 촉망받는 산악인으로 떠오른 박 대장은 8년2개월만에 히말라야 8,000m급 14개 좌를 모두 올라 세계 최단기간 14좌 등정 기록을 세우며 세계 최고의 산악인 대열에 합류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4년 남극 탐사에 나서 무보급 도보로 44일 만에 남극점에 도달했고 2005년에는 정반대의 북극점에 섰다.

이로써 박 대장은 세계 8,000m급 14좌와 7대륙 최고봉, 세계 3극점을 모두 등반하는 '산악 그랜드슬램'을 세계 최초로 달성하며 산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그리고 그의 도전은 계속됐다. 히말라야에 '코리아루트'를 개척해내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박 대장은 2009년 5월20일, 5번째 도전 만에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루트'라는 이름의 신루트를 개척해냈다. 그리고 지난 9월 안나푸르나 남벽에 신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돌아오지 않았다.

눈사태를 만나고 크레바스 속에 빠지기도 하는 등 수없이 많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던 박 대장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죽음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리도 나 역시 많은 사고를 겪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오가면서 조금씩 변해갔다. … 중략… 세상에는 여러가지 모습의 죽음들이 있다. 병마와 싸우다 고통 속에서 죽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자동차 사고로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내가 등반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내 삶은 산에서 그 마지막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런 죽음들에 비하면 대자연의 품, 산에서 맞는 죽음이란 얼마나 행복한가. 산 사나이로서 산에서 죽는 것,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내 운명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