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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관한이야기

조선후기 대표적인 목판본 조선전도 ‘해좌전도’

남산동 2018. 6. 28. 08:11

9세기 중반 조선의 대표적인 조선전도를 꼽으라면 단연 ‘해좌전도海左全圖’이다.

 전서체의 지도제목 ‘해좌海左’는 신라 때부터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지역을 지칭하던 용어로

이 지도에서는 ‘조선’을 가리킨다. 옛날부터 중국에서 부르는

우리나라의 지칭은 ‘해海’자 계열의 해동海東, 해향海鄕, 해방海邦 등과 ‘동東’자 계열의 동국東國, 동해東海, 동역東域 등이 있고

, 이밖에 삼한三韓, 청구靑丘, 접해鰈海 등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해좌전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해좌전도

‘해좌’가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에 위치한 정토사淨土寺 터에 있던

신라 말 고려 초의 선사 법경대사法鏡大師( 879~941)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자등탑비慈燈塔碑의 비문으로,

“강서(중국)의 법통이 해좌의 바다 한 구석까지 전파됨에 성주사의 무염회상無染會上

(무염은 신라 선문구산 중 성주산문의 개산조)은 천하에 비길 바가 없다所以來自江西 派於海左 海隅聖住 天下無雙”라는 내용이다.

해좌전도는 여러 기관과 개인에 의해 많은 양이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본 기사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M번-000122-00000)으로 해설하기로 한다.

지도는 목판채색으로 제작되었고, 크기는 가로 55.4 cm, 세로 97.8cm의 낱장지도이다.

지도의 크기가 지금의 국전지(A1)만 해 목판은 세로 4등분으로 나눠 판각했다.

맨 위판은 평안도 초산과 함경도 명천을 잇는 선으로 잘랐고,

두 번째 판은 황해도 풍천과 강원도 고성을 잇는 선으로,

 세 번째 판은 전라도 만경과 경상도 흥해를 잇는 선으로 잘랐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태는 종래의 조선전도의 유형을 따르고 있지만,

해안선의 드나듦이 현대 지도에 버금갈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위치는 올바르지 않겠지만 작은 섬까지 세세히 그렸고

, 울릉도와 우산도를 여타 지도와 달리 제 위치에 그린 것이 특색이다.

백두산에서부터 뻗어 내린 산줄기는 연총식連塚式으로 그린 위에 채색으로 돋보이게 했고,

 큰 산은 회화식으로 따로 강조했다.

물줄기는 쌍선과 단선으로 구분해 표시한 것으로 보아 쌍선하천은 가항수로可航水路를 나타낸 듯하고,

 쌍선하천 내와 해안을 따라 옅은 청색으로 수부를 채색해 육지와 구분지었다.

팔도의 경계는 점선 위에 붉은색 선을 가필해 눈에 띄게 했고, 도명道名은 표기하지 않았으나,

 군현명이 표기된 원(○) 기호를 채색해 팔도를 구분했다. 한성부는 이중 원 안에 ‘경京’이라 쓰고,

 경기도의 군현은 붉은색, 강원도는 담청색, 충청도는 갈색,

전라도는 분홍색, 경상도는 먹색, 황해도는 갈색, 평안도는 먹색,

 함경도는 분홍색으로 구분했다. 또 감영이 있는 곳은 원 기호 밖에 적색을 둘러 강조했다.

도로는 군현과 군현 사이를 직선으로 그렸고, 군현의 원 기호 내에는 한성부로부터의 거리를 적었다.

 거리숫자는 종래와 달리 아라비아 숫자 ‘영’을 사용해 ‘七百五’를 ‘七○五’로 표기한 것이 특색이다.

우리나라에 아라비아 숫자가 들어온 것은 1897년 대한제국 시기이나,

 이 지도를 봐서는 1800년대 중반부터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울진과 울릉도, 동래와 대마도, 통영과 거제, 곤양과 남해, 해남과 진도, 영암과 제주 간 해로가 그려져 있다.

지도의 제작 시기는 함경도 덕원 앞바다에 적힌 ‘純祖二十二年置厚州’에 따라 후주부厚州府가 설치된 1822년 이후로 본다.

 좀 더 자세하게는 진鎭으로 표시된 함경도 장진부長津府가 1843년(헌종 9년) 진으로 강등되었다가

 1859년(철종 10년)에 복치되었기 때문에 지도는 1843~1859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지명은 군현명 외에 산, 고개, 강, 병영·수영·행영,

 진보 기호(□)와 진보 명, 주요 역참, 섬 명 등이고, 그밖에 산성과 사찰명도 보인다.

지도 여백에는 각 지역의 지지地誌와 역사적 사실 등이 빈틈없이 적혀 있다.

 백두산 밑에 있는 글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여지고輿地考 백두산 조에 나오는 “산해경에 칭하기를 불함산,

 당사에 이르기를 장백산, 개국방략에 산의 높이가 2백여 리이고,

1천여 리를 뻗쳐 있으며 산꼭대기에 못이 있어 달문이라 하며 주위가 80여 리이고 압록,

 혼동, 애호의 세 강이 발원한다”는 내용을 적은 것이다.

지도 우측 제목 밑에는 조청국경회담 자료집인 <백두고적고白頭古蹟攷>에도 인용된 백두산에 관한 지지가 적혀있고,

 그 밑에는 정계비문定界碑文과 함경도의 역사를 적었다.

그 아래는 금강산, 설악산, 통천 총석정, 울릉도, 태백산, 팔공산, 가야산에 대한 위치와 경관에 대한 설명이고,

 그 밑의 ‘선조정유왜함울산宣祖丁酉倭陷蔚山’은 정유재란 때 울산성 전투에 대해 요약한 것이고,

 대마도對馬島 밑에는 대마도와 초량왜관草梁倭館에 관한 기록이고, 제주도 우측에는 제주에 관한 역사를 간략하게 적고 있다.

울릉도에 관한 설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우산도·울릉도 조에 나오는 내용으로

“울릉도는 본래 우산국으로 대단히 험해 복속되지 않아 신라는 이사부를 보내 항복시켰다.

중봉에서부터 동쪽 바닷길로 1만여 보, 서쪽 바닷길로 1만 3,000여 보, 남쪽 바닷길로 1만 5,000여 보, 북쪽으로 8,000여 보이다.

 촌락으로 삼을 만한 터가 일곱 곳 있으나 바위가 많아 사람이 살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도 좌측 제목 밑에는 폐사군廢四郡의 연혁,

 지도 좌측 위에서부터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4군의 현, 신라9주의 현과 읍, 고려8도의 읍 수를 적었다.

평안도 좌측 밑으로는 묘향산, 구월산, 덕적도, 수양산, 멸악산, 속리산, 계룡산, 덕유산, 변산, 지리산,

 흑산도에 대한 위치와 경관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고, 제주도 좌측에는 제주의 토산물을 일일이 나열했다.

양보경楊普景 교수의 논문 <목판본 조선전도 海左全圖의 유형 연구>에 따르면

“해좌전도는 많은 지리정보는 물론 주기를 통해 한 장의 지도에서

 우리나라의 현재와 과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지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이렇듯 해좌전도는 지도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울릉도와 우산도를 제 위치에 그리고 설명까지 덧붙여 영토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 지도라 할 수 있다.

필자 한국지도학회 부회장, 한국지도제작연구소 대표, 한국산악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