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는 저잣거리에서 검을 사용하지않는다

산에관한이야기

알프스를 함께오른 아버지와 딸

남산동 2014. 4. 1. 15:49

알프스 오른 아버지와 딸] “딸과 몽블랑 오른 감동에 지금도 가슴이 벅찹니다!”

큰딸 아라씨 함께 몽블랑 오른 D클라이밍클럽 임기식 회장
임아라씨 일본 직장에 휴가 내고 4개월간 훈련하며 등반 참가

	몽블랑 정상에 올라 포옹하고 있는 임기식 회장과 아라씨.
▲ 몽블랑 정상에 올라 포옹하고 있는 임기식 회장과 아라씨.

사람마다 최고의 순간에 대한 판단은 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딸과 알프스의 고봉을 함께 오른 아버지의 감동이 바로 그것이다. 지리산을 함께 종주했던 어린 딸이 어엿한 숙녀가 되어 설산 등반에 아빠와 동행했으니 분명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절대 잊지 못할 경험을 한 D클라이밍클럽 임기식(55) 회장의 이야기다.

“몽블랑 정상에서 큰딸인 아라와 부둥켜안고 있는 사진을 2×3m 크기로 뽑아서 집에 걸어뒀습니다. 딸아이와 함께 무사히 알프스를 오른 기쁨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것보다 더 컸습니다. 다시 오지 않을 벅찬 감동의 순간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임기식 회장과 큰딸 임아라(28)씨는 2013년 7월 9일부터 24일까지 15박 16일의 일정으로 유럽 알프스 산군의 몽블랑(4,807m)과 마터호른(4,478m)을 등반했다. D클라이밍클럽 등반대의 일원으로 조양현, 양대훈 대원과 함께였다. 당초 아라씨는 대원이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알프스 등반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 합류를 결정했다.

“아라는 세계 3대 뮤지컬 극단 가운데 하나인 일본의 ‘사계’라는 곳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이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직되어 그곳에서 4년째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알프스에 가겠다며 4개월간 휴가를 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겁니다.”

등반을 위해 휴가를 신청하니 일본에서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부터 “아예 그만두고 가라”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의지를 꺾지 못했고, 등반을 마치고 돌아간 뒤에는 오히려 모든 동료들이 부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뮤지컬 배우라는 것이 상당히 힘든 직업이에요. 단원이 700명 넘는 일본의 사계는 전용극장이 11개나 되는 큰 극단이고, 스파르타식 훈련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잠시도 자기 시간을 내기 힘들 만큼 생활이 타이트하다고 합니다. 그런 극단에서 지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아라씨는 “이번이 아니면 아빠와 함께하는 등반은 힘들 거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면서, “어릴 때 아빠와 함께 산을 오르고 리지등반을 하던 소중한 기억이 떠올라 무조건 따라 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에 아빠와 함께했던 산의 추억이 그녀를 알프스로 이끈 것이다.



	1 임기식 회장과 큰딸 아라씨가 알프스 등반 중 포즈를 취했다. 2 몽블랑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한 D클라이밍클럽 등반대. 왼쪽부터 양대훈, 조양현, 임아라씨.
▲ 1 임기식 회장과 큰딸 아라씨가 알프스 등반 중 포즈를 취했다. 2 몽블랑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한 D클라이밍클럽 등반대. 왼쪽부터 양대훈, 조양현, 임아라씨.
딸과 함께 등반하는 스트레스로
체중 8kg 줄어

임 회장은 두 딸과 산에 다니는 것을 즐겼다. 큰딸인 아라씨는 물론 둘째 딸인 아영씨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배낭을 둘러메고 산을 넘었다. 아라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지리산을 종주하며 아빠와 추억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고 북한산 암릉도 따라다녔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이후 산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은 대학을 졸업해 직장에 다니는 지금까지 이어졌다. 둘째 아영씨도 마찬가지였다.

임 회장으로서는 자식들이 성장하며 산과 멀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두 딸과 함께한 산행들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3년 봄 알프스 등반계획을 전해들은 아라씨가 전격 합류를 선언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D클라이밍클럽의 알프스 등반대는 애초에 4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대원 중 한 명이 부상을 입고 빠지면서 아라씨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아라가 함께 가겠다고 했을 때 내심 기뻤습니다. 스물여덟 된 딸과 함께 알프스를 오를 기회가 왔는데 아버지로서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지만 집사람은 ‘그런 곳을 왜 가느냐?’며 정색을 하고 딸을 말렸습니다. 그래도 큰딸 본인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여성 한 명이 합류하며 팀 분위기는 무척 밝아졌다. 막내로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등반대를 챙겨 주는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됐다. 하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딸과 함께 사고의 위험이 있는 등반을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뮤지컬 배우는 몸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다치게 되면 큰일이기에 아버지 입장에서 무척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1 브라이트호른의 가파른 설벽을 돌파하고 있는 대원들. 2 고소적응을 위해 에귀디미디에서 설원으로 이동하고 있는 임아라씨. 3 마터호른을 등반하다 산 아래를 응시하고 있는 임기식 회장.
▲ 1 브라이트호른의 가파른 설벽을 돌파하고 있는 대원들. 2 고소적응을 위해 에귀디미디에서 설원으로 이동하고 있는 임아라씨. 3 마터호른을 등반하다 산 아래를 응시하고 있는 임기식 회장.
“사실 등반하면서 상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준비도 많이 했지만 젊어서 그런지 등반은 딸아이가 더 잘했습니다. 하지만 동료이기 이전에 아버지로서 딸아이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였습니다. 그런 점 때문에 무척 힘들었습니다. 등반대를 이끄는 위치 때문에 내색은 안 했기에 아라는 잘 몰랐을 겁니다.”

유럽 알프스는 국내와 달리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등반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생소한 환경과 초행길이 주는 압박감 또한 대단하다. 산의 스케일이 크고 그만큼 위험도 역시 높기 때문에 딸의 안전에 신경을 쓰다 보니 임 회장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이다.

“등반을 가면서 만약을 위해 아내에게 편지까지 써뒀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회사 직원들에게도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글을 남겼고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라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그런데 딸아이가 함께하는 변수가 생기니 더욱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예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자식이 잘못되면 안 되잖아요.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체중이 8kg 줄었어요.”

어릴 때부터 함께한 산행이 알프스까지


	임기식 회장의 두 딸 아라, 아영씨는 어린 시절부터 아빠와 함께 산을 올랐다.
▲ 임기식 회장의 두 딸 아라, 아영씨는 어린 시절부터 아빠와 함께 산을 올랐다.
임 회장과 아라씨가 포함된 알프스 등반대는 7월 9일 출국해 다음날 프랑스 샤모니에서 등반을 시작했다. 이들은 에귀디미디 부근의 발레 브랑쉐 설원에서 고소적응을 한 뒤 7월 13일 코스믹산장을 출발해 북동릉 종주코스를 타고 몽블랑 정상에 섰다. 이 코스는 100m가 넘는 설빙벽 구간이 포함되어 있어 전문등반이 필수다. 이제 막 등반의 세계에 입문한 딸과 아버지가 함께 오르기에는 쉽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상에 올라 일생일대의 감격을 맛볼 수 있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딸아이도 한국에 들어와 115일 동안 진행된 훈련에 참가했어요. 매주 2박3일간 무거운 배낭을 지고 산을 넘고, 빙벽화와 아이젠을 착용한 채 암릉을 올랐어요. 그런 혹독한 훈련이 두려움을 이기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그래도 알프스는 우리나라와 환경이 너무 달라 쉽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등정 당일 구테산장까지 하산하려 했으나 체력 소모가 심해 중간에 발로무인대피소(4,362m)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침낭도 없고 식량도 거의 떨어져 초콜릿 한 조각으로 간신히 버텼다. 하지만 몽블랑을 오른 기쁨 때문인지 힘든지 몰랐다고 한다. 이들은 다음날 무인산장을 출발해 샤모니로 무사히 하산했다.

“정상에 섰을 때 아라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렵게 준비해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감격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저에게 ‘정말 고맙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산을 다니기 시작해 알프스까지 오르게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까지 이끌어준 선배 형들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몽블랑 등정 이후 등반대는 스위스로 이동해 마터호른에 도전했다. 마터호른에서는 임 회장과 조양현, 양대훈 대원 3명이 조를 이뤘다. 이들은 해발 4,240m까지 지점까지 올랐다가 정상을 포기하고 하산했다. 날씨가 나빠지고 시간이 지체되며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지 가이드 없이 생소한 외국의 산에서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몽블랑을 오르며 체력 소모가 심한 상태였다.

“마터호른 정상은 못 갔지만 계획된 등반일정은 거의 지켰습니다. 가이드 없이 순전히 등반대의 힘으로 그만큼 성과를 거둔 것에 만족합니다. 딸아이는 일본의 일터로 돌아간 뒤 전화 통화할 때면 알프스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2014년 여름에 다시 알프스에 가겠다”면서 “진짜 산악인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등반을 통해 산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된 모양입니다.”

D클라이밍클럽은 돌아오는 시즌에도 알프스 원정을 계획하고 있다. 정상을 코앞에 두고 돌아섰던 마터호른을 마무리하고 다른 봉우리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임 회장은 “다음에는 딸과 줄을 묶는 것은 피하고 싶다”면서 “너무 부담이 크기 때문에 힘든 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딸과 함께하지 못한다 해도 분명 돌아오는 여름에도 임 회장은 알프스에 있을 것이다. 선배로서 클럽의 리더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다. 큰딸 아라씨가 자신의 의지대로 다시 한 번 아빠와 알프스행 비행기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부전여전의 산 사랑이 만들어 아름다운 동행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