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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관한이야기

해동지도] 1747~1750년 제작된 회화식 군현지도집

남산동 2016. 9. 30. 12:52

조선시대 지도 발달의 전환기에 제작돼 가치 높아…보물 제1591호로 지정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29 1장 연표상(年表上)에 ‘해동에 국가가 있은 지는 오래되어(海東有國家久矣)…’라는 글이 나오듯 ‘해동(海東)’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를 일컫는 별칭이었다. 중국 사람들도 옛날부터 우리나라를 ‘바다의 동쪽에 있는 나라’라는 뜻으로 해동(海東) 또는 동국(東國)이라 불렀다. 우리나라 고지도 가운데 ‘해동’이 들어간 지도로는 해동지도(海東地圖), 해동여지도(海東輿地圖), 해동도(海東圖),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海東八道烽火山岳地圖) 등이 있고 ‘해동지도’와 동일 명칭의 지도도 여러 종이 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해동지도>(古大 4790-41)는 8책 128장 2축2장으로 구성된 지도책으로 조선전도, 8도 도별도, 전국 330여 군현지도, 관방지도뿐만 아니라 세계지도인 천하도(天下圖), 중국의 십상성도(十三省圖)·북경궁궐도(北京宮闕圖)·황성도(皇城圖), 왜국지도(倭國地圖), 유구국도(琉球國圖) 등이 망라되어 군현지도집의 역할을 넘어 세계아틀라스라고 말할 수 있다.

각 책은 가로 30cm, 세로 47.5cm의 일정한 규격으로 현대의 A3판보다 약간 크게 만들어졌고, 수록된 모든 지도는 채색필사로 제작되었다. 책 별 수록된 내용은 제1책 경기도, 제2책 황해도·평안도, 제3책 강원도·함경도·조선여진분계도(朝鮮女眞分界圖)·요계관방도(遼薊關防圖), 제4책 서북피아양계전도(西北彼我兩界全圖), 제5책 경상도, 제6책 충청도·천하도·심삽성도·북경궁궐도·황성도·왜국지도·유구국도, 제7책 전라도, 제8책 대동총도이고, 이 가운데 서북피아양계전도와 대동총도는 대형 낱장 지도로 되어 있다.

초대형 조선전도인 대동총도(大東摠圖) 돋보여

[최선웅의 고지도이야기 | 해동지도]
<해동지도>에 첨부된 대동총도(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해동지도>에는 제작 시기나 제작자 등이 명기되어 있지 않으나 관찬지도(官撰地圖)로 분류되고, 군현지도에 적힌 설명주기나 지명의 변천 시점 등으로 분석해 제작 시기는 1750년(영조 26)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양보경(楊普景) 교수의 해설 내용에 따르면 <해동지도>는 한 번에 편찬된 것이 아니라 수정된 지도들이 혼재되어 있고, 지도의 일부가 비변사지도(備邊司地圖)의 기록, 내용과 동일해 제작 시기를 1747~1750년 사이로 보고 있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 도별지도와 군현지도의 형태는 지도 주위에 해당 도·군현의 지지(地誌)가 기재되어 지도와 지지가 한 장에 담겨 있다. 군현지도는 산줄기와 하천이 간결하게 그려지고 여러 방면으로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인문적 사항으로는 관아를 비롯해 역원(驛院)·서원·향교·창고·누정·객사·제언(堤堰) 등이 회화식으로 그려지고, 지지는 거경(距京)거리 외에 호구(戶口)·전답·환곡총수(還穀總數)·군병총수·면명·연혁·산천·고적·토산 등이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해동지도>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지도는 거대한 대동총도(大東摠圖)이다. 이 지도의 크기는 가로 157.7cm, 세로 257.5cm로 그야말로 초대형 조선전도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윤곽은 조선 전기에 제작된 조선방역도(朝鮮方域圖)와 비슷한 형태로 북쪽이 위에서 누른 듯 찌부러져 압록강과 두만강이 거의 일직선에 가깝게 묘사되었다. 지도 제목은 우측 상단 구석에 ‘大東摠圖’라 쓰여 있고, 제목 옆에는 ‘자(子)’자를 거꾸로 적어 우측 상단이 북 방향임을 나타내고 있다.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는 잘 이어지지는 않았어도 백두대간의 골격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산줄기의 표현은 회화적인 연총식(連塚式)으로 척량을 이루는 산줄기는 크게, 그 외는 작게 묘사했다. 특히 장백산(長白山, 지금의 만탑산)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강조된 곧은 산줄기는 유사시 방어선의 개념이고, 압록강 줄기의 남쪽과 북쪽의 산줄기는 압록강에서 양안(兩岸)을 바라보듯 변동시점(變動視點)으로 묘사된 것은 변경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해안선의 정확성은 결여되었으나 매우 조밀하게 묘사되었고, 해안을 따라서는 수많은 섬들이 그려져 있다. 동해의 중앙부에는 조선 전기의 지도에서처럼 우산도 동쪽에 울릉도가 나란히 그려져 있다. 울릉도 주변에는 작은 섬 다섯 개가 그려져 있고, 섬 내에는 ‘삼척(三陟)’이라 쓰여 있어 울릉도가 강원도 삼척에 속했음을 알 수 있다.

우산도 밑에는 일본인이 머무른 것으로 추측되는 ‘왜선창가거(倭船倉可居)’가 쓰여 있으나, 이는 <해동지도> 강원도 편 울릉도 지도에 표기된 ‘倭船倉可居’를 그대로  옮겨 적은 착오인 것 같다.

전국 8도를 구분하는 계선(界線)은 없으나 군현 명을 기재한 작은 원 안의 바탕색을 달리하여 8도의 행정구분을 나타내고 있다. 수도는 적색으로 ‘경(京)’이라 표기하고, 경기도는 황색, 강원도는 녹색, 충청도는 분홍색, 전라도는 적색, 경상도는 주황색, 황해도는 백색, 평안도는 담청색, 함경도는 군청색으로 구분하였고 각 도의 감영(監營)은 적색으로 강조하였다. 또 각 군현명 옆에는 작은 글씨로 경기도·충청도·전라도·경상도·황해도는 ‘우(右)와 좌(左)’, 강원도는 ‘동(東)과 서(西)’, 함경도는 ‘북(北)과 남(南)’이라 기재된 것은 도의 분할을 나타낸 것이다.

도로는 각 군현을 잇는 전국의 도로망이 적색 선으로 그려졌는데, 간선도로는 굵게, 일반도로는 가늘게 구분했다. 또 경기만에서 전라도 남해안에 이르는 해안을 따라 적색 점선의 항로가 여러 군데 표시되어 있다. 군사시설인 진보(鎭堡)는 담청색의 작은 사각형 안에 명칭을 적었고, 전국 곳곳에는 산성(山城)이 강조되고 유사시 연락망인 봉수(烽燧)는 적색 십자가로 표시했다.

지도 우측 하단의 설명주기는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之圖)의 설명주기와 동일하게 ‘대개 우리나라는 지형이 북은 높고 남은 낮으며, 중간은 잘록하고 아래는 퍼졌는데, 백산을 머리라 하고, 대령을 등마루라 하면, 사람이 옆으로 등을 구부리고 서 있는 것과 같으며, 영남의 대마도와 호남의 탐라도는 두 발로 괸 것과 같아, 서북쪽에 앉아 동남쪽을 바라보는 형상이라는 것이 감여가(堪輿家)들의 정론이다(하략)’라는 내용인데, 다만 말미에 지도상의 방위인 ‘자오묘유(子午卯酉)’가 책판의 크기에 맞춰진 지도와 다르게 된 경위가 설명되어 있다.

전국 군현의 지도를 한데 묶은 군현지도집의 발달은 조선 후기 지도제작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변화이다. 그 가운데 <해동지도>는 한 시기의 지리정보를 종합한 지도책으로서는 부족한 감이 있지만 다양한 유형의 지도를 8책으로 엮은 데 의의가 클 뿐 아니라, 지도학사적으로도 조선시대 지도 발달의 전환기에 제작된 지도책으로 그 가치가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91호로 지정되었다.

필자  한국지도학회 부회장, 한국지도제작연구소 대표, 한국산악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