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는 저잣거리에서 검을 사용하지않는다

산에관한이야기

명사가 선택한 ‘생애 단 한 권의 산서’

남산동 2016. 10. 2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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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 산서 통해 등산 의미 찾기… 고전에 익숙지 않다면 경쾌한 책으로

 “산이 그곳에 있으니깐.”

불세출의 산악인 조지 말로리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강연에서 강의가 끝난 후

 “왜 산을 오르냐?”는 질문을 받는다. 세간에서는 말로리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귀찮은 상황을 넘기기 위해 대충 둘러댄 말이라고도 하지만 이 말은 등산의 본질을 가장 잘 함축한 불후의 명언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을 왜 가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말로리의 명언을 인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산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향의 의미가 아니라 귀찮은 상황을 넘겨버리기 위해

 이 말을 빌려오면 자신만의 등산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다.

산서 읽기는 자신의 등산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기초 작업이다.

 산서를 통해 가보지 못했던 산을 간접체험하고,

 처절한 등반에 같이 숨을 죽이며 등산의 본질에 대한 선배 산악인들의 고민을 같이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계청이 올해 초 발표한 ‘2015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지난해 독서율은 1994년 이래로 가장 낮은 수치다.

 장르를 불문하고 현대 사회인들의 독서 기피 현상은 고질적인 문제다.

한 번에 많은 책을 읽는 건 과욕이다. 단 한 권이라도 산을 오르듯 서두르지 말고 읽어야 한다.

 막상 읽으려 하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막막해, 우리 선배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지 궁금해진다.

 따라서 우리 산악계의 여러 명사에게 ‘단 한 권의 산서’를 추천해 달라고 청해 보았다.

필로소픽 출간. 라인홀트 메스너 지음. 272쪽. 김영도 역. 1만4,500원.

김영도 대한산악협회 고문, <검은 고독 흰 고독>

김영도 고문은 우리나라 산악계의 정신 그 자체다.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장,

이듬해 북극 탐험대 대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대한산악협회 고문으로 여전히 정력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집필한 저서와 역서만 20권에 이른다.

그런 김영도 고문이 단 한 권의 산서로 추천한 책은 라인홀트 메스너의 명저, <검은 고독 흰 고독>이다.

“중학생 때부터 책에 대한 애착이 컸어요.

 1970년대 초 산악회에 입회했을 때는 장비마저 갖추기 어려웠으니 산서는 생각도 못 했죠

. 1977년 에베레스트를 다녀온 이후 산서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기회가 닿아 처음으로 번역한 것이 바로 이 <검은 고독 흰 고독>입니다.”

이 책은 메스너가 1978년 최초의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후

 불과 6주 만에 홀로 낭가파르바트를 알파인스타일로 단독 등반한 여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다.

 김영도 고문은 “라인홀트 메스너에게서 정말 많이 배웠다”며

“보조장비를 많이 사용하면 그만큼 산이 작아진다는

 대목에서 그의 열정적인 등산세계에 감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세계에 미답봉이 없어진 지금, 고도보다는 태도(Attitude more than altitude)를 고민해야 합니다

. 알프스를 배경으로 발달한 서구의 등산문화의 형식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으나 아직 그 정신까지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워요

. 사실 우리나라는 가장 높은 산이 2,000m도 안 되는 열악한 산악 환경을 갖고 있잖아요?

 산을 높이기 위해서 서구의 등산세계를 더욱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이어 김영도 고문은 “대자연과 순수한 인간성을 부딪쳐가는,

 치열한 산악문화를 구축해야 한다”며

“정상만 보면서 가는 등산이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는

 엄격한 등산세계만이 우리의 산을 높이는 방법이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이 책에 담긴 메스너의 등산세계를 통해 늘상

 “산악인은 책을 읽는 자와 안 읽는 자로 나뉘고,

 읽는 자도 글을 쓰는 자와 안 쓰는 자로 나뉜다”고

 말하는 김영도 고문의 준엄한 등산세계의 유래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