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는 저잣거리에서 검을 사용하지않는다

산에관한이야기

간월재 '부산 청년 추모비'의 소리 없는 눈물

남산동 2017. 1. 31. 15:27

- 83년 부산수산대 산악부 김종필 씨, 악천후로 길 잃어 억새밭에서 동사
- 울주군 강행하는 간월재휴게소 설치, 대피시설 아닌 매점용… 억장 무너져

요즘 영남알프스 신불산 간월재에 가보면 10월 억새를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억새 실루엣이 흩날리는 이곳 간월재 억새밭에는 28년 전에 사망한 '부산 청년' 추모비가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짙은 안개와 악천후로 길을 잃고 억새밭에서 쪼그린 채 얼어 죽은 청년을 추모하기 위해 부산수산대학(부경대 전신) 산악부에서 세운 추모비(碑)에는 이런 비문이 새겨져 있다.


푸른 잎이 돋아나는 사월 어느 날/ 이 산록에서 말없이/ 젊은 싹 틔우다/ 꽃나이 떨어져 간/ 김종필 대원을 애도하여/ 그 뜨거운 정열이 모인 여기/ 고요히 잠들다.


간월재 억새밭에서 저체온증으로 정신을 잃어가던 그의 머릿 속을 끝까지 떠나지 못했던 것은 그의 어머니와 대피소였을 것이다. 추모비를 볼 때마다 몸을 피할 곳이 없어 싸늘하게 죽어간 그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부산 청년'의 부모는 지금도 사월이 오면 간월재 억새밭을 찾아 먼저 간 아들을 그리워하며 깊은 상념에 잠기곤 한다.

간월재 억새밭에 있는 '부산 청년' 추모비가 다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알다시피 영남알프스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간월재 능선은 비너스의 곡선처럼 천혜의 진경인 곳이다. 울산 울주군은 이 아름다운 간월재 능선을 무참히 끊고 그 자리에 '간월재 휴게소'를 짓는다며 콘크리트 반죽을 하고 있다. 현재 25%의 공정으로 1층 콘크리트 건물 모습이 드러나면서 유장한 간월재 능선은 무참히 잘려나갔다. 자연 경관을 해치고, 바람길을 막고 있어 영남알프스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저항에 부딪혀 있다.

그러나 울주군은 등산객의 편의를 도모하는 시설이라며 벼락치기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울주군은 행정구역 안에 있는 간월재가 자기 집 정원쯤으로 알고 독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전국 공원 내 설치된 판매시설을 없애는 중이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경관조성을 위해 송전탑도 철거하는 추세인데, 영남알프스만은 맹렬하게 역주행 중인 것.

더구나 '간월재 휴게소'는 악천후를 피할 수 있는 대피소나 산장이 아니라 '매점'으로 알려져 그 당위성은 더 추락했다. 매점이 들어서면 편리한 점도 있겠지만 자연 그대로가 더 소중하다. 더구나 야간에는 문을 열지 않고, 화장실이 포함되지 않아 악천후에는 제대로 역할을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비 사업을 이유로 상행위를 하던 잡상인들을 모두 쫓아낸 울주군이 5억3000만 원의 혈세를 들여 매점을 설치하는 사업은 등산객 정서에도 맞지 않다.

   
배성동 시인

 

영남알프스 일대는 자연 경관을 손대지 못하도록 보존지구로 지정된 곳이 대부분이다. 보존을 위한 명분이 도리어 지역 단체장의 욕심 때문에 개발행위로 오염을 가속화시키고 자연을 망가트리고 있다. 영남알프스 훼손의 서막을 연 '간월재 매점'을 막아야 한다. 즉시 공사를 중단하고, 공청회를 통해 지금의 간월재 대피소를 리모델링하거나 현재 있는 대피소 인근으로 위치를 옮겨야 한다.

간월재는 억센 비바람과 짙은 안개, 악천후로 유명한 곳이다. 만약 1983년 당시에 간월재에 악천후를 피할 수 있는 대피소나 산장이 있었다면 '부산 청년'이 얼어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부산 청년' 추모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