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는 저잣거리에서 검을 사용하지않는다

지리산산행&종주

200606지리산동북부탐방산행

남산동 2020. 6. 7. 05:59

산행일-20200606

산행구간지점명칭-추모공원-묵묘-능선진입-634갈림-전망터-산약초재배지-꽃봉산-공개바위-마당재-베틀재-군계능선

                        -군계능선삼거리갈림-오뚜기바위-상내봉삼거리-고열암터-신열암터-안락문-독녀암-의론대-선녀굴-

                        유슬이굴-선열암터-환희대-양민거주터-산죽비트-노장대동-새마을지도자-적조암

산행인-카리스마

*날씨*

*산행전기*

2월말부터 계획했던 지리동북부의탐방을

6월첫주에 하게된다

코로나19로인해3,4월은 움직이지못하고 5월은주말마다

비가 내려서 산행을못하고 6월에 들어서야

산행에 나서본다

붉은색선 산행구간트렉(5만지형)

산행구간거리밎지점명칭도표

위성구글2차분석

산청휴계소

오후의 비예보때문에 서둘러

새벽1시에 출발하여 산행중 비를 맞지않으려고 일찍출발했다

휴게소에서 피곤하지만 커피한잔하고 추모공원에 도착한다

추모공원 전경

등산안내도 앞에서 한컷

gps켜고 모든준비를 마친다

들머리 진입중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진행

첫돌탑을 만난다

이묘지점 뒤로부터는 능선진입로까지 길이 잘나오지않는다

6월이라 숲이 우거져 소로의 길이 전혀 가시덤불에

막혀 보이지않는다

그래서 능선진입로까지의 좌표만 설정하고

숲의풀이나 가시덤불이 누워져 잇는 짐승다닌길로해서 숲을 헤치고 능선으로 진입한다

일반산객들은숲이 많이자란 5월이후부터는

오지의깊은산은가지않는것이조타

능선진입전 숲을헤치고

산길을 찾아 트레브스일부하여 진행하며 본궤도에 온다

짐승들의 다닌길로 해서 본궤도에 진입하다보니

숲을 헤친다고 다소 체력이 많이 소비되었다

버섯전경

아직이른아침이라 몸이풀릴동안 천천히

체력을 보충하기위해 사진을 담아도본다

삼각점지점

산약초재배지의 위험표기

산장이정표

이른 새벽의 안개가 산으로 접어들면서

시야가 보이지않기 시작한다

음산한 기운은 있으나 새소리와 거미줄묻혀가며 산길을 걷는기분이좋다

출입금지푯말

꽃봉산도착

셀카

산행전날 술을 좀마시고 잠도 잘못자고

새벽에 출발하고 아무것도 못먹고 진행하다보니 허기가 많이졋다

지형도를 잠시보며 가야할길을 먼저 보아두고

이곳에서 아침을 먹는다

참 올만에 지리의 오지로 들어오면서

나침판과 지도를가지고 와본다

오지산행시 전투산행으로

편리하게 진행하기위해 영양식 주먹밥으로 조식과중식을 가지고왔다

너무 허기가져서 체력이 더이상소비되기전

아침을 먹는다

산약초재배지 위험표지안내문

운서갈림지점

우측은 천상굴로 하여 가는방향이다

점점 짙어지는 새벽안개

전망터

조망하기 조은곳인데 새벽안개로인해서

아무것도 보이지않는다

공개바위갈림지점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서

한국판 피사의사탑이라 불리는

공개바위를 보고 나온다

숲에 가려진공개바위전경

곳곳에 출입금지푯말이 있다

공개바위바로아래에서 찌건전경

뒷쪽으로 가서 담아본전경

공개바위 안내문

출입금지푯말을 넘어

짙어지는 새벽안개에 시야가 가려 잘보이진 않지만 잘 진행하며 간다

고도가 조금씩 높아질수록

지리의 오지숲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나 갈수없고 쉬이갈수없는 지리의 동북부를 향해 점차 깊이깊이 들어간다

짙은 숲내음과 싱그러움이 나를 설레게 만든다

숲이 많이자라

거미줄과 이슬에 몸이 젖지만 베틀재까지는 그래도

산길이 조은편이라 룰루랄라 진행한다

마당재 지나 베틀재에 도착

잠시 휴식하며 갈림길이라 지형도를 꺼내고 갈길을 살핀다

뚜렷하게 보이는 직진방향의길로가면

목적한 군계능선이 아닌 다른방향으로 길을 가진다

나역시 잠시 무심결에 지도도 보지않고 가다

3분여 알바를 하다 다시 돌아온다 베틀재에서 군계능선 진입은

희미한 소로의우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그래서 지도를 꺼내놓고 목적지를 독도하고 방향을 잡아놓고 쉬었다

군계능선에 진입하며 점점 오지의 숲정글의 느낌을 받는다

오랫만의 오지 동북부로 진입하며

인위적인곳이 없는 천혜의 자연경관이 살아숨쉬는곳 비록 새벽안개로

시야가 보이지않고 아무도없는 이른아침의 산길

난 이길이 참 좋고 편하다

정글같은 숲속이지만 아래엔 소로의 희미한 길들이 있다

6월이라 숲이 많이자라 가시덤불에 걸키기도 하지만 올만의 오지산행을 하며

너무 힐링이 된다

비록 군계능선 삼거리 까지는 계속 긴거리를 오름길을 쳐야 하는구간이라

다소 힘이 들지만 그래도 좋다

징글징글한 산죽길도 지난다

오늘은 산죽숲에서는 스틱으로 산죽을 치지않았다

작년에 폐암자터 탐방하면서 벌집을 건드려 벌에 쏘여 홀로 지리의 오지숲속에서

큰일날뻔하였다

고도1000m를 넘어서고있다

좌표를 설정해놓은 곳으로 잘진행하고있다

관중

다시또 산죽숲으로 먼지풀풀 마시며간다

벌집건드릴까 신경도 쓴다

멋진 지리의 깊은 동북부숲길

멧돼지가 금방 파놓은듯한 흔적

뿌리를 먹기위해 산죽숲중간중간 많이 파혜쳐놓았다

드댜 오뚜기 바위도착

마치 지리동부능선구간의 끝없는 오름길을 지나가듯

군계능선의 오름길도 참 징글하게 친다

바위에 올라서서 바라본전경

안개에 아무곳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동부능선의 옹암(진주독바위)

초령(지금의새봉)등 조망이 아주뛰어난곳인데

오늘은 안보인다 몆년전에 왔을때는 지난시간 그리도 힘들게 진행하였던

동부능선을 이곳에서 바라보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상내봉삼거리

보이는곳에서 좌는 군계능선방향 우측은 싸립재로하여 새봉으로 가진다

상내봉삼거리에서 아래로 보이는 길은

벽송사능선으로 가는길이다

숲이 많이 자라서 조심조심 내려선다

몆군데의 갈림지점을 내려선다

몆년전에 표기해둔표시

올바로 잘가고잇다는 증거이다

잠시 조망터에서 상내봉을 바라보는데

잘보이지않는다

고열암터 도착

오늘은 삼거리에서 고열암터로 바로내려서서 먼저 들러보고간다

샘터의 물도 깨끗한데 도솔산인님의

수고로 샘터청소해노아서 동북부에서 요긴하게 활용할수있다

도솔산인님과우연히 만나 조우한다

고열암터를 지나 신열암터 앞에서 뜻하지않게 도솔산인님을 만나

휴식하며 만남의  반가움을 서로전하고

도솔산인님의 술까지 가벼이 한잔마시고 다음을 기약한다

참고로 도솔산인님은 지리동부에 관한한

내개인적으론 정말 열정적으로 그리고 가장신뢰성있게

고증체취한다

우리선조들의 옛길(점필재)길등 아홉모롱이루트와 방장문이라는 석각을

이번에 찾아내서 길을 개척하고  지리동부길에

많은 편리함을 위해 샘터청소등

많은 수고를 하신분이고

난 오랜시간 산행을 하면서 산에서 보아오던

캠프들의 떼박과시끄러움.일반산객들의 산행방해등의 박산행과달리

산행을 하면서 산에서 하룻밤 머물며 고증체취를 위해

산에서 머무는 전경에 영향을 받아 산에서 절대 캠프들처럼

야영을 하지않겟다고 맘먹은 나에게  박산행에 동기부여를 가지게 하였다

올바르게 박산행을 하시는분이라

 이전에는 본적은 없지만 가끔씩 소통을 하고있엇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리의 동북부를 국립공원운동연합회동료들과

산행을 이었다

도솔산인님과 일행분들

신열암터 전경

다시 돌아서 안락문 입구로 간다

안락문 내부전경

독녀암가면서 바라본 전경

독녀암바위들

아래에는 슬링도 걸려있다

의론대전망터

선녀굴내부

이곳에서 선녀굴을 보고 나오다 작은나무둥치를 밟았는데

밟은나무둥치가 뱅글돌면서

내리막이라 위험하게 몆바퀴 굴럿다 이때 gps가 바위에 받혀 에러가나서

기록을 멈추고 이전의 트렉으로 지형도을 표가 하엿다

이때문에 유슬이굴과 선열암터 가면서 숲이 자라 길이 나오지않는곳에서 고생을 한다

빨치산 정순득이 마지막까지 투항하다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선녀굴을 다시 돌아나와서 유슬이굴 가면서

만난 나무둥치

드댜 길도없는 산길을 잇기 시작한다

다래덩쿨에 내내 배낭걸리고 모자걸려 벗어지고하면서 귀찮았다

거기다 날파리와 모기때들이 내내 땀에 젖은얼굴의

눈에 붙어서 정말 귀찮았다

유슬이굴 내부전경

이곳에도 터의 흔적과 기와등이 있다

이작은돌탑이 선열암터갈림 표시이다

아마 도솔산인님의 일행분이 해놓았다고 한것같다

암자터도 보이고 흔적도 보인다

선열암터에는 잡목들이 많이 자라고 있고

옛흔적들이 보였다

이제 선열암터를 돌아나와서

하산길을 시작한다 환희대와 양민거주터를 거치면된다

그런데 내려오다 환희대 근처에서 길을 노치게 된다 물론 황새날등으로 길이

있어서 내려가도 되지만 가보지 않은길이라

어느정도 걸어야 길이 끝날지를 모르기에 더 위험할수도 있다

또한 목적한길이 아니면 가지도 않지만

길이보인다고 함부로 가다간 끊임없이 길을 가야할수도 있어서

일단 숲을 헤치고 환쟁이골방향의 지골을 찾아서 간다

gps도 에러가 나서 이미 벌써 사용을 하지않아서 좌표를 볼수가엄서서

좀은 걱정되었지만 황새날등의 진행방향우측의 골로 내려가면

환쟁이골전의 지골이라 별걱정없이 황새날등을 가지않고 골로 찾아서

길이 아예없는 오지의 숲으로 들어서서 내려간다

이지점에서 황새날등과 골로 갈라지는데

숲이 많이자라 길이 보이지않아서

머리속의 환쟁이골로 숲속을 치며 지형도의 위치를 나침판에 마추어보며 내려선다

그렇게 숲길에서 방향만보고

길은 없는곳이지만 골을찾아 내려오면서 산죽길을 만난다

약간의 걱정은 있어도 두려움이나 큰걱정은 하지않았다

이럴땐 혼자가 가장편하다 다른동료들과 이스면 이곳의 산속은 아무것도

볼수가 없고 어디가어디인지 분간이 안될수있지만

지형도를 통해 나의 현재위치를 알수있기에 다소 힘들긴해도

지형도를 보면서 정교하게 맵매칭한 좌표와마루금을 보면서 숲을헤치고 길을 찾아나간다

함께하는 동료가 이스면 겁을내고 당황하기때문에 같이 힘들어질수가 잇다

찾는방향이 시간이 걸릴수도있고 다행 빨리찾으면 더좋고 이런데

산길이 없는곳에서는 오지산행을 해보지않은

산우나 동료들은 당연 조난될까 겁을 낸다 그래서 다른동료나

산우에게 함께하는것을 내스스로 권하지 않는다

  지형도를 보며 독도할수가있어서 길이없는곳에 들어서더라도

내가 가지고간 지형도에

등고선상에 마루금을 그어놓는데 그것을 보고

어느지점으로 가면 가장빠르게 길과마주할수잇는지를 안다

그래서 지도의중요성은 산에서는제1의 원칙이다

노장대동

노장대동거주터흔적

빨치산과토벌대 양쪽으로부터 힘들게 해서 이주를하였다고 한다

한참을 걸어 출입금지길을 빠져나온다

새마을지도자집

적조암전경

이곳에서 택시를 불러 함양터미널로 간다

함양으로 가는중에 비가 세차게 내렷다 자칫 조금늦었다면 비에젖은 채로

산행을 하여야 했다

*산행후기*

오랫만에 들어선 지리 동북부 오지산길

일부구간 가보지않았던 꽃봉산 공개바위 구간과

작년엔가 폐암자터 탐방면서 벌에쏘여 중탈하면서 선열암을 빠트리고

양민거주터로 중탈하여

이번에 두루두루 돌아보기위해 두어번 갔던구간이 겹치지만

가는길에 전부 돌아보고 싶었다

잠을 못자고 산행을 하게되어 몹씨 몸이피곤하고

컨디션이 조치않았지만

극복하면서 쉬이갈수없는 산길을 잇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점차 짙어지는 새벽안개에

가시거리가 3m정도밖에 되지는 않지만 운치는 있엇다

그렇게 중간에 신열암터에서

도솔산인님과 조우하게되고 잠시의 반가움을 나누고

각기의 목적한길로 헤어지면서

난 선녀굴을 들러고

일부 가보지않았던 유슬이굴과 선열암터를 찾아나선다

역시나 지리의 오지는 깊다

온갖날파리때에 시달리고 먼지는풀풀날리고

너덜에서는 길이 잘보이지않고

힘들게 힘들게 진행하고 산길을 내려선다

모처럼의 지리오지 동북부탐방에 설레임과 가슴이

뜨거우면서 아무도없는 산길,숲

그리고 쳔혜의자연경관과 옛선조들과 민초들이 다녔던 길을

되돌아보며 오늘도 산에서 힐링하고 내려선다20200606 지리동북부에서 카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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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얼마전 도솔산인님의 아홉모롱이 길 중에서 발견한 방장문(석각)을 소개한다

오랜시간 지리의 오지에서 선조들의 길을 고증체취하고

탐방하며 만든자료를 일부 받아서 내블로거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말없이 둘어오는 숱한 산우들도 자세히 보고 공부하고 참고하면서

지리의 깊숙한 내면을 보기바람,,,,,,,,,

점필재의 구롱(아홉 모롱이) 길 방장문 석각 발견(200516)

▣ 일 시 : 2020년 5월 16일(토) 12:00경

▣ 장 소 :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구롱 길 중 여덟 모롱이)

▣ 좌 표 : E 127.741100, N 35.378400 고도, 1,097m

▣ 답사자 : 8명(조용헌 박사 외 역사문화조사단 7명)

 

조선일보의 칼럼니스트 조용헌 박사의 취재 지원 산행을 하면서, 지리산국립공원 역사문화조사단에서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구롱(아홉 모롱이) 길을 조사하던 중, 여덟 모롱이(팔롱, 八隴)의 석문(石門)에서 방장문(方丈門) 석각을 발견하였다. 이 석문(石門)은 송대와 벽송사 그리고 엄천과 오봉리에서 천왕봉에 오르는 길목에 있다. 쉽게 설명하면 방장문(方丈門)은 지리 동북부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자연 석문으로, 내지리와 외지리를 구분하는 경계(석전 사문에는 봉전령)이다. 이 길은 신라의 화랑 영랑이 3,000명의 낭도를 거느리고 영랑대에 올랐다는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삼국시대 이전에 가야인들이 이미 구축한 산길로 추정된다. 금관 가야의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의 전설이 구전으로 전해지는 지명과 성터가 주변에 산재해 있음을 깊이 있게 음미(吟味)해볼 필요가 있다.

 

점필재의 아홉 모롱이 길은 고도 1,100m, 고저 차이 약 50m 내외, 고열암에서 청이당까지 도상거리로 약 4.75km 정도 이어지는데, 고저 차이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다. 구롱(九隴)에서 롱(隴)은 阝(좌부변, 언덕부 = 阜)와 용(龍)이 결합한 글자이다. 롱(隴)은 용처럼 구불구불하지만, 부드럽고 편안한 모롱이 길을 의미한다. 롱(隴)은 모롱이 즉 경상도 사투리로 모랭이 또는 모래이로 이해하면 쉽다. 이 아홉 모롱이 길의 방장문(方丈門)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500년 전 가야인들이 천왕봉으로 오르는 통천문(通天門)이요, 신라가 가락국을 합병(532년)한 후에는 화랑들이 영랑대로 오르는 선도(仙道)의 문이며, 조선시대에는 관료와 사대부, 유생들이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유람의 관문이다. 그렇다면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 나오는 석문(石門)과 금강문(金剛門), 통천문(通天門)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석문과 금강문과 통천문

 

가. 1611년 유몽인의 기행시와 두류산록

明朝我向石門去 : 내일 아침 나는 석문으로 떠날 것이고/師在頭流雲水間 : 선사는 두류산 구름과 계곡 사이에 머물겠지요.

○ 癸酉. 侵晨而行掠甕巖. 淸夷堂 : 4월 4일 계유일. 새벽에 길을 떠나 옹암(甕巖)을 지나 청이당(淸夷堂)에 들어갔다.

 

☞ 掠은 중국 漢漢字典에 '輕輕擦過'로 되어 있는데, '가볍게 스쳐 지나가다'라는 뜻. 옹암을 가까이에서 보고 지나간 것으로 이해함. 여기에서 1611년 유몽인의 두류산일록에 나오는 석문은 옹암 가까이 있는 석문으로 판단함.

 

나. 1922년 권도용의 방장산부(이재구 선생 譯)

두리(杜里)의 폐사(廢寺)를 지나니 양쪽의 바위가 서로 붙어 있는 곳이 있어 무엇이라 부르는지 물었더니 금강문(金剛門)이라고 하였다. 이 또한 승려들이 보이는 대로 갖다 붙인 말이다. 過杜里之廢寺 有兩巖之交粘問奚名則曰金剛門亦禪師之權辭以拈眡

 

☞ 권도용의 동선을 벽송사-어름터-두리의 폐사-집터-여섯 모롱이-일곱 모롱이-여덟모롱이-방장문-아홉모롱이(쑥밭재)-청이당으로 추정하면 방장문이 금강문일 가능성이 있으나 확정하기는 어렵다.

 

다. 1924년 강계형의 두류록(이재구 선생 譯)

드디어 차례로 서서 나아가 겨우 장구목[缶項부항]에 도착하니 갈증이 나고 침이 말랐다. 곧이어 사립재[扉峴비현]에 당도하여 벗 치조를 방문했더니 아이가 말하기를 조금 있으면 돌아올 거라 했지만 일행에게 뒤쳐질까봐 힘써 길을 올랐다. 아래위의 석문 지났다. 문의 양쪽은 모두 바위이고 가운데로 한 줄기 좁은 길이 통하였다. 바위의 모양은 위가 붙어있고 가운데가 비어 십여인을 수용할 수 있으며 흰 글씨로 통천문(通天門) 세 글자가 석면에 쓰여 있었다. 遂序立前進纔到缶項而喉渴無涎矣迤到扉峴訪友致祚則兒言少選當返而恐其失伴努力登途過上下石門門之兩傍皆石而中通一逕巖形上合而中虛可容十餘人以白書通天門三字於石面

 

☞ '아래 위의 석문을 지났다.' '바위의 모양은 위가 붙어있고 가운데가 비어 십여인을 수용할 수 있다.' : 사립재에서 통천문 길을 확인함.(200530) 독바위 인근 석문으로 판단함.

 

라. 점필재 길 구간별 도상 거리(실제 거리와 차이가 있음) 자료제공 칠성님

1) 엄천~거머리재~적조암 : 3.58km

2) 적조암~고열암 : 2.90km(적조암~지장사 갈림길 : 1.77km, 지장사 갈림길~고열암 : 1.13km)

3) 고열암~동부 샘터 : 1.93km(고열암~소림선방 : 1.01km, 소림선방~동부샘터 : 0.92km)

4) 동부샘터~청이당 : 2.82km(동부샘터~방장문 : 1.84km, 방장문~청이당 : 0.98km)

5) 청이당~영랑대 : 2.27km(청이당~마암 : 1.30km, 마암~영랑대)

6) 영랑대~천왕봉 : 2.20km(영랑대~중봉 : 1.49km, 중봉~천왕봉 : 0.71km)

7) 천왕봉~장터목 : 1.5km

8) 장터목~영신대 : 4.22km

9) 영신대~바른재 들머리 : 0.47km

10) 바른재 들머리~백무동 : 4.5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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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문(方丈門)

 

2. 구롱(아홉 모롱이) 길 방장문 석각

 

가. 방장문(方丈門)에서 丈(장)에 대하여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아홉 모롱이 길에 있는 석각 방장문(方丈門)에서 丈(장)의 오른쪽 상단에 丶(점주)가 더해진 글자는 희귀한 이체자이다. 서예대자전에서 명나라 때 양명학의 창시자 왕수인(王守仁, 1472~1528)의 행서와 서자불명(書者不明)의 예서에 보인다. 방장문(方丈門) 필획의 주인과 석각의 연대는 아직 미상이지만, 석각이 깊고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미루어 근세에 새긴 것으로 추정함.

 

나. 方丈의 어휘에 대한 유래

 

1)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실록〉 「지리지」의 지리산에 대한 설명

"杜甫詩所謂方丈三韓外註及《通鑑輯覽》云: "方丈在帶方郡之南。是也。(두보의 시에서 말한 '방장산은 삼한 외지에 있다'라는 구절과 《통감집람》의 '방장산은 대방군의 남쪽에 있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2) 차천로(車天輅)의 《오산설림(五山說林)》

"杜詩有方丈三韓外之句。說者以爲三神山皆在我國。方丈卽智異山瀛洲卽漢挐山蓬萊卽金剛山也。"(두보의 시에 있는 '방장은 삼한의 외지에 있다'는 구절을 해설하는 사람들은 '삼신산은 모두 우리나라(조선)에 있다. 방장산은 지리산이며, 영주산은 한라산, 봉래산은 금강산이다.'라고 한다.)"

 

[출처] [관광자원해설] 국립공원 정리

 

 

다. 방장문 석각의 필획과 시기

 

1) 1923년 개벽 제34호 지리산보(1923.04.01)

함양 군수 민인호가 함양명승고적보존회(보승회)를 조직하여 동군 유지 강위수(姜渭秀)는 등산객들의 편리를 위하여 天王峯에 망해정(望海亭)을 짓고, 박노익(朴魯翊)과 영원사승(靈源寺僧) 일동은 제석당(帝釋堂)을 건축하였으며, 이진우(李璡雨)와 벽송사승(碧松寺僧) 일동은 마암당(馬岩堂)을 건축 하였는데 두 곳이 모두 중봉이다.(兩處皆 中峯)

 

2) 1924년 강계형의 두류록

종자들이 말하기를, “전에 산에 오른 자들은 관을 벗고 나무를 끌어안고 바위를 끼고 간신히 나아갔는데 지금은 보존사(保存社 *함양명승고적보존회)의 힘으로 산아래 사람을 시켜 벌목을 하고 험한 곳을 고르게 한 덕분에 이 앞까지는 평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또 유산자들의 노숙을 생각하여 마암상봉제석당 등지에 판옥(板屋)을 세우고 풍우를 가리게 하였으니 혜택이 유산인에게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나와 내명은 모두 추위에 곤란을 겪는 자들이므로 길가의 초목이 무성한 것을 보고 말하기를 “한 골짜기의 땔나무를 긁어 집으로 보내면 겨울을 나는 데에 어렵지 않겠다.”고 하자, 종자가 듣고 말하기를 “(저의) 마음씀이 마을사람들에게 멀리 미치지 못하니 스스로 부끄럽습니다.” 하였다.

 

3) 방장문 석각의 필획과 시기 추정

① 書者不明, 석각 시기 미상, 석각의 상태가 깊고 양호하여 근세에 새겼을 것으로 보임.

② 방장문(方丈門)에서 丈(장)의 오른쪽 상단에 丶(점주)가 더해진 글자는 이체자.(왕양명 필체)

③ 1922년 보존사(保存社 함양명승고적보존회)에서 마암당을 지은 이후에 새긴 것으로 추정함.

 

 

방장문(方丈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