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는 저잣거리에서 검을 사용하지않는다

산에관한이야기

산행길이 인생길이다

남산동 2008. 10. 16. 17:00

산행길이 인생길이다

 

  

 

1. 산에 오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자기 몫의 산행은 자기가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기 몫을 아무도 대신 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대신 가 줄 수도 없고 업어다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피곤해도 일어서야 한다.
힘들어도 가야만 한다.
천리 길이 한걸음에서 시작되듯 만리길도 한발 한발 걷는 결과일 뿐이므로.
인생길도 무엇이 다르겠는가.



2. 산을 오르는 프로는 장비(tool)가 많고 인생의 프로에게는 지혜가 많다.



동네 뒷산이라면 고무신을 신은 채로 올라가도 큰 문제가 없으리라.
그러나 제법 큰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거기에 걸 맞는 장비들이 필요하다.
간단한 일상사에야 달리 지혜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나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서는 지혜로 무장해야 하는 것과 마찬 가지다.



3. 산에 오르기는 힘들고 산을 내려가기는 어렵다.



산에서 몸을 다치는 일은 대부분 내리막길에서다.
오를 때는 힘만 뒷받침 되면 충분하지만 내리막에서는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주역 64괘 중 첫번째인 건(乾)괘에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대목이 나온다.
뜻을 이룬 자가 절정에 올랐을 때 더욱 삼가고 조심하라는 가르침이다.
산이든 인생길이든 정상에 서있는 사람들이 음미해 볼 경구가 아닐 수 없다.



4. 힘든 산길에서는 기도문을 암송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그것도 아니면 숫자를 세는 것도 도움이 된다.



힘들 때 흥얼거릴 수만 있어도 힘이 보태지기 때문이다.
한발 한발 숫자를 세면서 열 걸음마다,

혹은 백 걸음마다 짧게 쉬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목표를 작게 세우면 그만큼 달성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밭을 매거나 길쌈을 할 때 노래를 부르곤 했다.
아마도 힘들다는 생각을 잊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산에 오르면서 노동요가 생겨난 유래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5. 산에서는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자기 스타일로 자기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험한 산길도 끝까지 갈 수 있다.
남의 보폭 에 맞추거나 누구의 속도를 따르면 쉬 피곤해 질뿐만 아니라
산에서 맛 볼 수 있는 즐거움이 다 달아나게 마련이다.
인생살이에서 자기 페이스를 지키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는 일이 중요한 까닭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뱁새에게 황새 걸음을 걷지 말라는 교훈은 그래서 만들어 졌으리라.




6. 산길이 힘들어 보여 빙 돌아서 간다면 그 길은 쉬울까?



산길은 어디로 가도 비슷하게 힘들다.
그래서 힘들어 보이는 길일지라도 정면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미국의 무료 양로원에서 외로운 노후를 보내는 노인들에 대한 통계는

우리에게 생각할 과제를 던져 준다.
그들은 젊은 시절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정면승부를 거는 대신에 그것들로부터 도망치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익사가 무서워 물가에 가지 않았다던가,

부상이 두려워 스케이트를 배우지 않았다는 식이다.



7. 산에도 지름길은 있다. 그러나 산행에 왕도는 없다.



헬기를 타고 정상에 내린다면 그것을 누가 산행이라 이르겠는가?
인생에도 지름길은 있다.
그러나 인생에도 왕도는 없다.
타고난 성품, 투입한 노력, 길러진 실력만이 성공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줄을 타고 손쉽게 출세를 하거나,

누구의 후광으로 한 자리를 차지한다면 본인의 마음은 떳떳할까?
마치 헬기를 타고 정상에 내린 등산객처럼 멋적지 않겠는가.



8. 산길은 올라 갈수록 어렵다.



체력은 떨어지고 바람의 저항은 거세지고,

경사는 급해지며, 마실 물은 줄어들고, 산소는 부족해진다.

모든 어려움이 함께 머무는 곳 그곳이 바로 정상이다.

그런 점에서 인생과 산행은 정말 비슷한 게 많다.
인생에서도 무엇인가를 이루기 직전이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많은 위인들이 성공의 문턱에서 겪어야 했던

좌절과 고통에 대해 고백한 얘기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므로 행여 우리가 정말 어렵고 힘든 지경을 만나면

그것이 인생의 정점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9. 지혜로운 사람은 미리부터 산행을 대비한다.



산에 오를 체력, 가는 곳에 대한 정보, 산행에 필요한 물자,

산행의 조력자, 함께할 동반자를 미리 준비한다.
지혜 없는 자는 무모하게 산을 오른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오른다.
산에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는 대부분 무모한 출발 때문이다.
하루 이틀의 산행에도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면

한 평생을 사는 인생길에 계획과 준비가 필요함은 재론할 여지가 없으리라.



10. 여럿이 가는 산행에서 모두가 끝까지 가기란 쉽지 않다.



중간에 사고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중도에 포기하여 탈락하는 사람도 있고,

가기로 약속했다가 애초에 불참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인생길에서도 백년을 함께 하자든지
혹은 도원의 결의와 같은 우정을 약속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이 끝까지 지켜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자주 잊어버린 나머지 지키지 못할 약속을 쉽게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11. 산행은 계산대로 되지 않는다.



인생이 계산대로 되지 않듯이.
맘먹은 대로 다 된다면 그것은 또 무슨 재미이겠는가.
계산과는 달리 의외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 세상살이요 산행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얄팍한 셈틀로 수없이 많은 계산을 한다.
거래를 할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우정과 사랑에도 계산은 배제되지 않는다.
그런데 결과가 항상 계산한 대로 나오던가?



12. 짐이란 많든 적든 역시 짐이다.



그래서 짊어진 사람에게는 버거운 존재다.
많은 짐을 지고 산에 오르는 사람이나 작은 짐을 지고 산에 오르는 사람이나

그 나름대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나 능력 없는 사람에게나,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인생길이 비슷하게 어렵듯이.

그러므로 내 짐만 유독 무겁다는 생각을 버릴 수만 있다면

인생길의 불행을 꽤 많이 덜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한 이가 베토벤이었던가.

“불행이란 이상스러운 것이라서 사람들이 그것을 이야기 할수록 불행은 점점 커진다.”



13. 산행은 앞서거니 뒷서거니의 연속이다.



출발 시점이 비슷한 사람끼리는 산에서 앞서거니와 뒷서거니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산을 내려오는 것은 거의가 비슷한 시각의 일이다.
직장생활에서도 이런 현상은 자주 나타난다.
앞서가던 사람이 뒷사람에게 추월당하는 일도 생기고

뒤 처진 사람이 다시 앞으로 나가는 일도 허다하다.
그러나 이들이 직장을 떠나는 것은 거의가 비슷한 시기의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을 떠날 때 보면

생전의 앞섬과 뒤섬의 선후는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된다.



14. 산행에서 난이도의 총화는 같다.



처음이 어려우면 나중이 쉽고

나중이 어려운 길은 이미 초반을 쉽게 보냈다는 증거가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산리에서 출발하여 천왕봉을 오르는 사람이나

노고단을 출발점으로 하여 천왕봉으로 가는 사람에게나

지리산 종주는 똑 같은 어려움을 준다.
다만 어느 한쪽이 초반에는 쉬웠을 뿐이다.



15. 물리학에서 말하는 일의 원리(w=f.s)야 말로

산길에서 새삼 빛을 발하는 법칙이다.



급한 경사면이 너무 힘들어 갈지(之)자로 산을 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상대적으로 시간은 더 걸리게 마련이다.
힘을 덜 들게 하기 위해서는 걸음을 더 많이 옮겨야 하고 시간은 더 걸리게 된다.
세상살이에서도 어려운 길을 피하다 보면

결국 정상에 오르기까지 더 많은 걸음을 걸어야만 한다.



16. 산길을 가다가 어떤 지점에 앉아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도무지 아득하기만 하다.



꿈같기도 하고. 언제 그 길을 다 왔을까?
정말 내가 그 길을 왔단 말인가?
그래서 인생길은 자주 산길에 비유되는 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본 인생길은 얼마나 아득한 것이던가.



17. 이 고생 하면서 내가 왜 산에 왔나?



고통의 순간에는 누구나 주저앉고 싶다.
가장 힘든 순간을 데드 포인트(dead point)라 이름 할 수 있는데,

이 데드 포인트를 이기고 나면 사람들은 그 고통의 순간을

기억 저편으로 묻어둔 채 발길을 재촉한다.
그러나 이 고비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중도에 포기하여 산을 내려오거나

혹은 원래 가려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

아들의 인내심이 걱정되는 부모라면

틈 날 때 마다 사랑하는 아들을 산으로 보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엄청난 출산의 고통을 이겨 냈기에

사랑하는 아들을 얻을 수 있었노라는 가르침도 함께 묶어서...



18. 가는 길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산행에는 큰 차이가 있다.



길을 아는 사람은 페이스 조절이 가능하기에 덜 지친다.
그들은 속도를 낼 곳과 천천히 가야 할 곳을 구분하며,

힘을 쓸 지점과 힘을 아낄 지점을 분별하므로 힘을 안배할 수가 있다.
그래서 처음 가는 산행에는 경험 많은 안내자가 소중하다.
인생도 마찬가지여서 아마도 인생의 길을 아는 사람을

가리켜 선지식(善知識)이라고 불렀으리라.



19. 앞길이란 항상 기대와 함께 두려움의 대상이다.



산길에서 넘어야 할 어려운 재 하나를 앞에 두고 걱정 근심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걱정을 앞 당겨서 치르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앉아서 걱정만 한다고 달라지는 것 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뚜벅뚜벅 산길을 오르는 것 외에 달리 무슨 묘안이 있겠는가?



20. 산길의 고비에는 학점이 매겨져 있다.



고비 때 마다 1 학점을 따게 된다.
어려운 코스에는 한꺼번에 여러 학점이 주어 지기도 한다.
인생의 도에 이르는 일도 결국은 학점 따는 공부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공부의 연속 이라고.
이 말도 어쩌면 산길을 오가며 얻어진 깨달음의 결과가 아닐는지.



21. 산에도 길이 있다.



동네에만 길이 있는 줄 알지만 산에도 분명 길이 있다.
먼 곳에서 보면 그게 그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산에도 길이 있다.
어떤 산을 몇 번이나 오르면 길눈이 트일까?
인생을 몇 년이나 살면 삶의 길눈이 트일까?
동네 길이 훤한 사람도 산길은 어두울 수가 있고,

산길에 밝다고 해서 인생길까지 훤한 것은 아니다.



22. 산에는 왜 가는가?



서양인들은 대체로 도전과 정복의 개념으로 산을 대한다.
동양의 정서로는 구도와 수양의 개념으로 이해한다.
적어도 동양인들에게 산은 정복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산을 어떻게 정복한단 말인가.
산은 자연일 뿐인데...



23. 산에 오르려면 허리를 굽히지 않을 수 없다.



아니 허리를 굽히지 않고는 산에 오를 재간이 없다.
대체로 높은 곳에 오른 사람들은 이렇듯

산 입구에서부터 몸을 자주 굽혔던 사람들이다.
이런 굴신력이 아니고는 높은 곳에 이르지 못한다.
높으면 높을수록 굽힘도 커져야만 하니까.



24. 산을 오르는 사람과 산을 내려가는 사람이 서로 마주칠 때

우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실감하게 된다.



내려가는 이들은 대체로 여유가 있고 오르는 이들은 숨이 차서 헐떡거린다.
그러나 여유 있는 하산 길 이전에 이미 힘든 등산길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남의 입장을 생각하는 훈련장으로 산행 이상 좋은 도장이 없다.



25. 호젓한 산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누구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수고 하십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산행 되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런데 인사를 하지 않는 두 가지 경우도 있다.
단체 등산객을 만나서 사람의 희소성이 없어졌거나

너무 지쳐서 여유가 없어졌거나...


26. 산에서 지키는 도덕심과 예절이라면,

산에서 느끼는 생명에의 외경심이라면,

산에서 느끼는 만큼만 사람의 귀함을 실생활에서 적용한다면,

세상의 모습이 얼마나 좋을까.



산에서는 구도자를 닮아 있던 사람들도

하산하면 그 모습이 흐트러짐은 어떤 조화일까.
교회당이나 성당이나 법당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성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가 세상에 나가면 다른 얼굴이 되는 것처럼...



27. 산에 오를 때의 짐과 내려 올 때의 짐은 무게에서 큰 차이가 난다.



오를 때는 비상시를 대비하나 내려올 때는 평상시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올라갈 때의 짐은 꽉 찰 만큼 많아서 묵직한 무게를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 재 두 재 넘으면서 짐은 조금씩 줄어든다.
하산하여 산의 발뿌리를 벗어날 무렵이면 대부분의 배낭은 텅텅 비게 된다.



28. 산에 가면 모두가 무등(無等)이 된다.

 

왕후장상도 장삼이사도 모두 무등이다.

무등은 평등과는 다르다.
평등이나 동등은 등위가 존재함을 전제로 모두가 똑 같은 등위라고 주장하는 반면,

무등은 처음부터 등위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산에 가면 등위가 없고 산만 있을 뿐이다.



29. 산행에서 최대의 적은 험난한 절벽도, 높은 봉우리도,

깊은 계곡, 사나운 맹수도 아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허기와 한기다.
인생의 최대의 적은 무엇일까.
역시 허기와 한기가 아닐까.
이 허기와 한기를 빼고 어떻게 인생을 말할 수 있을까?
허기와 한기만 이길 수 있다면 산길이나 인생길이나 모두 가볼만 하다.

30. 산길에서 다리를 다치거나 발바닥이 아프거나

몸의 일부라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닐 때 그 고통은 예삿일이 아니다.

인생길에서 병을 얻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부처는 병을 인생의 네 가지 고통 중 하나로 꼽았으리라.



31. 우리 몸은 7할이 물이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걸어 다니는 물통에 다름 아니다.
수분이 부족하여 탈수증이 생기면 생명은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산길에서 물이 부족한 고통은 공포심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좋은 산은 마실 수 있는 좋은 물이 넉넉한 산을 이름 한다.



32. 산은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다.



환경이 변하기 때문이다.
환경변화에 따라 인간도 옷을 갈아입는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퇴보와 몰락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모든 문명의 영고성쇠를 응전과 도전의 관계로 풀이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그래서 산길에서 자주 생각하게 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33. 잘못된 지도 때문에 산길을 헤맨 적이 있는가?



잘못된 이정표 때문에 고생해본 적이 있는가?
서툰 안내인 때문에 산길에서 방황한 적이 있는가?
잘못된 정보는 산행을 훨씬 힘들게 만들고 심한 경우 산행을 아예 망치게도 한다.
우리가 가진 인생길의 지도나 이정표에는 이상이 없는가?
정말 인생의 도움이 되는 안내자를 가지고 있는가?



34. 인생에는 리허설이 없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을 리허설도 없이 곧 바로 실행에 옮기면서 살아간다.
아내노릇, 남편노릇, 군대 생활, 직장생활 등 모두 리허설이 없다.
한번만 기회를 준다면 이번에는 잘 할 것만 같은데

리허설이 없는 인생이기에 두 번째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만약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까?
같은 산을 두 번째 갈 때는 누워서 떡 먹기처럼 아주 쉽던가?
두 번째일지라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으리라.
느끼는 어려움과 치러야 할 수고는 매번 비슷한 무게로 다가 온다.